[한경에세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입력 2023-07-18 18:38   수정 2023-07-19 00:09

2030년 봄. 국내 제약기업은 의약품 원료를 더 이상 생산하지 않고 해외에서 전량을 수입한다. 원가만 따지면 중국 인도 등 값싼 외국산 원료에 의존하는 것이 당연한 데다 국산 원료를 사용한다고 해서 우대해주는 조항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해 여름, 새로운 감염병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치고 환자들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면서 의약품 원료 가격이 폭등한다. 각국은 자국민 생명이 우선이라며 모든 원료의약품 수출을 금지하고, 원료의약품 100% 수입 의존국이던 한국은 아무리 비싼 값을 줘도 원료를 구할 수 없어 의약품을 만들어낼 수 없는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다.

상상 속 미래지만 가능성이 없지 않다. 우리나라가 결코 맞이해서는 안 될, ‘원료의약품 자급률 0%’ 시대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2023년 현재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0%대까지 떨어졌다.

우리는 일상의 소중한 가치를 가벼이 여기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나 자연과 비할 수는 없겠지만 의약품도 그런 존재이지 않을까.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 원료의약품 주요 생산국인 인도는 해열진통제와 항생제 등 26개 원료의약품 수출을 전격 제한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자 예상되는 의약품 부족 현상에 대비하려는 것이었다. 그 여파로 미국과 유럽 등 각국에서 일부 의약품 품귀 사태가 발생했다. 왜 그랬을까? 자체 생산보다는 인건비가 저렴한 인도와 중국에서 의약품과 원료의 상당수를 들여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가격 면에서나 지리적으로도 의약품 접근성이 좋다. 필요할 때 손쉽게 약을 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생산 인프라도 탄탄한 편이다. 완제의약품 10개 중 7개는 국내 기업이 만든다. 하지만 원료의약품은 얘기가 다르다. 우리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최근 5년간 평균 20%대에 불과하다. 나머지 80%는 당연히 해외에서 수입한다.

보건의료 측면에서 꼭 필요한데 시장 기능만으로는 안정적인 공급이 어려운 ‘국가필수의약품’ 상황도 여의치 않다. 필수의약품 중 국내산 원료로 생산하는 비율은 10%가 채 안 된다. 많은 기업이 낮은 채산성을 감수하면서 필수의약품을 만드는 것은 환자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민간의 이 같은 사회적 책임 의식에 기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제약기업의 생산 역량과 사회적 책임, 여기에 정부의 합리적 지원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안정적인 의약품 공급 체계가 확립될 것이다.

소 잃고 나서 외양간을 고치기 이전에 최선의 방법은 소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외양간을 나가버린 소를 찾으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소를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의 소, 누군가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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