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북한의 핵도발에 대처하기 위해 출범시킨 핵협의그룹(NCG)이 북한의 선제공격에 따른 전쟁 발발 가능성을 낮춰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NCG는 미국이 공언한 핵무기 사용 등 ‘높은 수준의 반격’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 전쟁에 대한 북한의 기대보수를 낮춘다는 얘기다.
19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황태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달 초 국가안보실이 발행한 웹진에 ‘워싱턴선언과 한미동맹 확장 핵억제의 게임이론적 분석’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기고했다.
황 교수는 게임이론과 통계방법론 등을 활용해 대북 비핵화와 제재 정책의 효과 등을 연구해온 전문가다. 그는 기고에서 NCG를 통한 한반도에서의 전쟁 억제 가능성을 분석한 최신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NCG의 대북 억제효과에 대한 학계 연구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미국에서는 국제정치학자인 로버트 파월이 게임이론을 통해 미국·소련 간 상호확증파괴(MAD)로 대표되는 ‘공포의 균형’이 냉전 시기 전쟁 억제에 기여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적 있다.
황 교수는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인한 전쟁 시 일반적 게임모형을 구성하고 매개변수(파라미터)를 이용해 각 상황별 결과를 분석했다. 북한의 선제공격은 현상유지의 기대보수가 전쟁보다 낮고, 한·미 간 비대칭정보가 존재해 북한 내 급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경우로 상정했다.
북한의 전쟁에 대한 기대보수를 낮추려면 미국의 ‘핵 반격’ 등 높은 수준의 반격 약속의 신뢰성이 높아야 한다. 황 교수는 NCG 창설은 세 가지 측면에서 억제의 신뢰성을 높이고 전쟁의 확률을 낮출 수 있다고 봤다.
먼저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 4월 워싱턴선언으로 미국의 ‘청중비용’이 높아진 점을 꼽았다. 청중비용은 정책결정자가 공개적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평판악화로 지불하는 정치적 비용을 뜻한다.
황 교수는 “미국은 워싱턴선언을 통해 공개적으로 청중비용을 증가시킴으로써 스스로 약속을 어기기 힘든 환경을 만들었고, 북한은 그만큼 확장억제 실효성을 믿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NCG를 통해 한·미 간 군사정보의 비대칭성이 극복될 수 있다는 점도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미국 핵 자산과 전략 정보, 공동 기획·연습 등으로 한국의 관여도와 발언권이 높아지면서 전술핵의 한반도 배치 여부와 무관하게 NCG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핵기획그룹(NPG)와 유사한 핵 협의 장치로 기능하게 됐다는 게 황 교수 견해다.
한·미가 NCG를 통해 인적·조직적 네트워크 등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게 됐다는 점도 미국이 약한 반격 쪽으로 선회할 인센티브를 줄이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한·미는 조만간 한국 전문가를 미국에 파견해 핵 관련 전문성 및 실전 능력과 관련한 교육 훈련을 받게 하기로 전날 합의했다.
미 의회에서는 현재 차관보급 협의체인 NCG를 양국 외교·국방 장관이 수석대표로 참여하는 ‘2+2 회의체’로 격상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 간사인 제임스 리시 의원(공화당)은 18일 “NCG는 국방·국무장관이 공동으로 이끄는 2+2 구성으로 실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선제공격을 해올 때 한·미 동맹의 반응이 ‘강한 반격’이냐 ‘약한 반격’이냐가 중요하다”며 “강한 반격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북한이 확실히 갖고 있다면 어지간해서는 도발하기 어렵다”고 했다.
전날 서울에서 열린 NCG 출범회의에 대해 황 교수는 “양국 최고위급이 모여 NCG 상설화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했다는 점에서 출발이 좋았다”며 “커트 캠벨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핵 무기를 직접 사용하겠다는 표현만 안 했을 뿐 사실상 가장 높은 수준의 강력한 응징을 공언한 것도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당시 캠벨 조정관은 “북이 핵을 사용하면 미국은 압도적으로 대응하게 될 것”이라며 “국가 정책에서 이보다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미국의) 입장을 말씀드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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