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는 명쾌했다. 정부 지출과 수입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재정 지출을 늘리기 위해선 더 많은 세금을 거두거나 차입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돈을 풀수록 인플레이션은 심화하고, 빈곤층의 가계는 더 어려워진다. 실업률은 높아지고, 소비는 위축된다.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올바른 선택이지만 실천에 옮기는 것은 단순하지 않았다.
핵심은 정치공학 논리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의지다. 긴축은 정치적 자살행위다. 노무현 대통령도 재임 시절 “미래를 위한 정책은 유권자의 외면을 받고, 정권 교체로 이어진다”고 한탄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표현대로 건전재정을 좋아할 정치권력은 어디에도 없다.
다른 개혁과제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가 공언한 연금, 교육, 노동 3대 개혁은 입법을 통해 완성된다. 여소야대 권력 구조에선 불가능하다. 방법은 정책 집행을 통해 직접 나서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관료와 무기력한 여권을 질타하기 위해 목소리는 커지고, 시장 개입도 빈번하게 이뤄진다. 생필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 당국의 구두개입과 함께 공권력이 동원되는 것이 단적인 예다. 대통령이 커질수록 시장은 작아진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정치 구조(structure)를 바꾸기 위해선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돈풀기와 같은 포퓰리즘 정책을 써야 한다. 한국의 정치 지도자가 숙명적으로 맞닥뜨리는 딜레마다. 정치인 윤석열도 예외일 수 없다. 한 정치 평론가가 최근 유튜브 방송에 나와 윤 대통령을 향해 “구조는 바꾸지 못한 채 프로세스(과정)에만 매달렸다”고 비아냥댔지만, 이 역시 ‘불편한 진실’이다.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하는 과제가 대통령 개인의 ‘정치 플레이’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권 카르텔을 깨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대표 사례가 이어마크(earmark) 예산이다. 가축의 소유주가 양이나 소의 귀를 뚫어 자신의 소유임을 나타내기 위해 다는 표식을 뜻하는 이어마크는 특정 사업에 배정하는 선심성 예산을 뜻하는 행정용어이기도 하다. 5년 계획으로 잡힌 도로 등 지방 인프라 사업이 대표적이다. 정부 복지사업을 대행하는 민간 사업자들도 전년도에 받은 예산을 한 푼도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쓴다. 이들에게 긴축은 “줬다가 뺏는 것”과 다름없다. 이렇게 카르텔 구조는 고착화하고 개혁은 좌초된다.
모든 정치인이 개혁을 외치지만 구호에 그친다. 성공하기 위해선 비타협적인 태도로 원칙을 고수하는 것밖에 없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재임 시절인 2013년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택할 것”이라며 대처의 TINA를 소환해 과잉복지를 축소하고 영국병 수술에 성공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2010년 유럽의 부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긴축을 강조하며 ‘대안이 없다(alternative-less)’고 했다. 시장경제가 옳고 유일한 시스템인지에 대한 논쟁은 오래전에 끝났다. 윤석열 정부가 놓쳐서는 안 되는 원칙이다.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에게 대안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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