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7월 24일 10:2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다음 달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는 반도체 설계기업 파두에 초창기 투자해 '잭팟'을 터뜨린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있다. 포레스트파트너스 출신인 이진상 대표(사진)가 2017년 설립한 레버런트파트너스다. 2018년 파두에 250억원을 투자한 이 회사는 기업공개(IPO)로 7배 이상의 투자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표는 "기술과 사람을 믿고 투자한 것이 좋은 결실을 본 것 같다"며 "테크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그로쓰(성장) 전문 PEF로서 제 2, 3의 파두를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외면받던 팹리스에 과감히 투자
이 대표는 반도체 스타트업 파두를 비롯해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IGA웍스,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 인테리어 스타트업 아파트멘터리 등 기술기업에 투자해왔다. 이중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 파두와 IGA에이웍스는 5년 전만해도 투자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었던 회사들이다.이 대표는 "파두에 투자할 당시 국내 팹리스 스타트 중 양산용 칩을 찍어본 곳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투자자가 모이지 않았다"며 "게다가 대기업도 못 하는 데이터센터용 차세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컨트롤러용 칩을 스타트업이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글로벌 NAND 제조사들이 인수 또는 자체 연구개발(R&D)을 통해 수 년 간 제품 개발에 도전했지만 삼성전자 제외하고 의미 있는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 대표는 "파두는 스타트업으로 출발했지만, SK텔레콤, 삼성전자 등 대기업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연구개발 경험을 축적한 인력들이 창업해 어떤 것이 사업성이 있고 어떤 분야에 집중해야 승산이 있을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며 "성공 여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시장성과 방향이 분명했기에 위기에도 창업 멤버들이 똘똘 뭉쳐 끌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투자를 결정한 이유는 기술과 사람이다. 이지효 파두 공동대표와 왓튼 MBA 동기인 그는 창업 소식을 듣고 2016년 사무실을 찾았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오전 10시에 강남구 논현동의 허름한 건물에 벨을 눌렀는데 파두의 공동대표인 남이현 박사가 머리에 까치집을 짓고 양치질을 하며 문을 열어줬다"며 "창업 멤버들이 매일 밤을 새워 연구에 몰두할 정도로 열정이 있었고 시너지가 대단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파두의 기업가치가 1500억원 대로 평가됐던 2018년 250억원을 투자했고 이후 120억원의 후속 투자를 단행했다. 반도체 업황이 부진하던 시기였고 매년 연구개발에 수백억 원이 투입되다 보니 대형 PEF들은 투자를 꺼렸다. 그러던 중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최종 계약에 실패하면서 회사는 존폐 기로를 맞았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가 됐다. 파두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기업의 퀄러티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른 회사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파두는 페이스북의 모회사인 메타와 대규모 공급 계약을 맺었고 글로벌 우주항공기업과 계약도 따냈다. 그 결과 지난해 매출이 10배 이상 급증한 564억원을 달성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5억원으로 흑자전환에도 성공했다. 회사 측은 올해 매출이 1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적이 뒷받침되자 기업가치도 불어났다. 파두 시가총액은 공모가 상단 기준 1조5000억원 수준에 이른다. 이 대표가 투자했을 때와 비교해 10배 가까이 불어났다. 레버런트파트너스가 보유한 지분은 11.8%로, 상장 시 보유 지분가치는 약 1700억원대다. 이 대표는 "공모가 기준으로 현재 7~8배 정도의 높은 수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기술보다 고객과 시장, 인적 역량 결집된 분야에 기회
이 대표는 파두의 성공을 발판으로 앞으로도 성장 단계의 기술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초기 단계의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VC)과 상장 전 단계에 투자하는 대형 PEF 사이의 빈틈을 공략하는 전략이다.그는 "성장 단계의 회사들은 수년 간 시행착오를 거쳐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해 폭발적인 매출을 만들어내야 한다"며 "레버런트파트너스는 그동안 기업가치가 1000억원에서 3000억원대 사이의 성장 기업을 발굴해 200억원가량을 리드 투자하고 여러 투자자가 모여서 투자하는 클럽딜보다는 단독 투자를 통해 성장해왔다"고 설명했다.
투자를 결정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기술보다 고객과 시장이다. 그는 "실사 과정에서 '이 회사의 기술이 가장 좋은가'를 검증하기 보다는 '고객과 시장이 이 기술을 사용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평가한다"며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모든 비용을 고려했을 때 고객과 시장이 사용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레버런트는 2017년 설립 이후 매년 프로젝트 펀드를 결성해 현재 6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2019년엔 데이터 분석 플랫폼 IGA웍스의 시리즈 D에 26억원을 투자했다. 당시 1300억원대였던 IGA웍스는 기업가치가 1조원 대로 불어났다. 이 회사는 내년 기업공개를 준비하고 있다. 2021년엔 연세대학교와 건강기능식품 회사 네추럴웨이를 인수했다. 네츄럴웨이의 지분 80%를 약 750억원에 인수했다. 첫 바이아웃 딜이다.
이 대표는 앞으로 데이터와 관련된 인프라와 디지털 전환과 관련된 소프트웨어 회사들에 투자 기회가 있다고 봤다. 그는 "전 세계 시장을 보면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의 등장으로 여러 기업이 몰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미국과 비교해 국내는 소프트웨어 기업의 저변이 약한 편이어서 앞으로 글로벌 스타트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인적 역량이 결집된 하이테크 제조업 분야에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 전지 등의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뛰어난 역량의 엔지니어들이 성장을 뒷받침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파두처럼 기술 창업을 통해 시장을 개척하는 성장 기업들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플랫폼 기업들의 성장과 인적 역량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사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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