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현지시간) 찾은 미국 워싱턴주 벨뷰시. 시애틀 시내에서 차로 20분을 달리면 테라파워의 에버렛 연구소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2008년 설립한 테라파워는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SK㈜와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8월 이 업체에 2억5000만달러(약 3000억원)를 투자하며 빌 게이츠와 함께 선도투자자 지위를 확보했다. 올 5월엔 한국수력원자력이 SK 등과 함께 테라파워의 차세대 SMR 사업에 참여하는 협약을 맺었다.
한국과 협업 범위를 넓히고 있는 테라파워는 이날 처음 국내 언론에 내부 시설을 공개했다. 이 연구소에 들어서면 곳곳에서 소금을 볼 수 있다. 일반 원전에선 핵분열 반응에서 나오는 고속 중성자를 냉각시키기 위해 물을 쓰지만 테라파워는 냉각재로 소금을 구성하는 소듐(나트륨)을 액체 상태로 사용한다. 이른바 소듐냉각고속로(SFR)이다. 이렇게 하면 사용후 핵연료가 냉각재로 물을 쓸 때의 10%밖에 나오지 않는다. 냉각재로 물을 쓰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과 달리 오염수도 발생하지 않는다.
소금의 높은 끓는점도 이점이다. 소금은 끓는점이 섭씨 883도여서 원자로가 뜨거워져도 물처럼 빨리 증발하지 않는다.
물은 또 100도가 넘어가면 증기가 되기 때문에 원자로 가동 시 압력을 통제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반면 액체 나트륨은 끓는 점이 높아 저압 상태로 가동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원전 사고가 나도 물보다 액체 나트륨을 냉각재로 쓰는게 훨씬 더 안전하다는 게 테라파워 측의 설명이다.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는 "화력발전이나 풍력발전 등과 비교해봐도 원자력 만큼 전력 생산에서 안전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소듐 원자로에서 냉각재가 흡수한 열은 에너지 저장시설로 이동해 발전에 사용된다. 여기엔 고온에서 액체로 변하는 용융염이 쓰인다. 질산나트륨과 질산칼륨의 혼합물로, 열에너지를 보관할 수 있다. 이런 용융염 저장시설(MSS)을 SFR과 결합한 것이 테라파워 SMR의 특성이다.
테러파워는 SMR를 실험실용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20억달러(2조5000억원)을 투자받아 와이오밍주 케머러시에 SMR을 직접 건설할 계획이다. 2030년에 완공해 SMR이 안전하고 상업화할 수 있는 지를 시험해보는 실증단지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차세대 SMR로 25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지난해 착공 전만해도 주민 반대가 심했다. 핵 폐기물을 비롯한 각종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테라파워는 첨단 기술로 안전 문제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345MW(메가와트)급 소형원전이어서 사용후 핵연료가 기존 원전보다 적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지역 상생형 모델로 지역민들의 마음을 샀다. 이 곳엔 1963년 건립된 화력발전소가 있다. 오래된 발전소여서 효율이 떨어졌다. 석탄이 원료인 만큼 환경오염 문제도 심각했다.
결국 2025년에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되면 발전소에서 일하던 노동자들도 일자리를 잃게 된다. 테라파워는 SMR 실증단지를 통해 그 인력들을 모두 채용하기로 했다. 주민들에게 일자리와 더 나은 발전소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해 SMR를 건설할 수 있게 됐다.
르베크 CEO는 "원자력 산업에서 커뮤니케이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우려사항이 있을 때 그것을 무시하고 지나가지 말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어떤 회사는 기술 개발만 하고 최초 SMR을 다른 나라에 바로 공급하려 하지만 테라파워는 우리 기술이 안전하고 미국에서 허가받은 기술이라는 점을 보여준 뒤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르베크 CEO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류에 대해 "기본적으로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가 답해야 하겠지만 엔지니어 입장에서 보기에 걱정할 필요없이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벨뷰=정인설 워싱턴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