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 ‘킬러 규제’ ‘킬러 카르텔’. 윤 정부의 아젠다 어휘다.
어떤 어휘를 반복하면 각인 효과가 커진다. 언론이 군불을 때주기도 한다. 킬러 콘텐츠는 기본이고, ‘고막 킬러’에 ‘트위터 킬러 스레드’ 등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 커다란 프레임을 짠다. 야당에서는 ‘킬러 정권’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박근혜 정부 때는 ‘손톱 밑 가시’에서 ‘대못’, 그리고 ‘전봇대’로 확장했다. 효과는 괜찮은 편이다. 국민과 정책 시행자에게 명확한 언질을 주기 때문이다. 정권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목표도 단순하고 명확하게 제시한다.
하지만 언어는 잘못 만들면 종종 수렁에 빠진다. ‘시럽급여’가 단적인 예다. 메시지는 분명했지만 서사가 부족했다. 달의 앞면은 잘 가리켰지만 뒷면은 보지 못했다. 유연성을 핵심으로 하는 근로시간 개편은 발표 자료의 몇몇 문구 때문에 ‘주 69시간제’로 되치기당했다.
규제 혁파는 무척 어렵다. 뭔가를 힘겹게 없애고 나면 또 다른 규제가 좀비처럼 살아난다. 박근혜 정부는 탄핵 직전까지 총 1507건의 규제를 완화했다. 741건은 법령 개정, 766건은 행정 규제를 개선했다. 그러는 사이 새 규제가 1243건 생겼다. 임기 내내 적폐 청산을 외친 문재인 정부는 규제 완화 7315건에 새 규제 2866건을 기록했다. 국민은 별반 체감하지 못했다.
대못이든 킬러든 겨냥하는 과녁은 같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비효율을 제거해 경제적 효율과 국민 후생을 높이는 것이다. 매번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구호가 바뀌는 것은 규제 완화가 그만큼 어렵기도 하거니와 그 자체로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키는 관료가 쥐고 있다. 그들이 움직여야 세상이 바뀐다. 공무원들이 팔짱을 끼고 있으면 대못도, 킬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설득과 공감 없는 일방적 지시로는 킬러 규제에 신명 나게 빨간줄을 긋게 하기 어렵다.
김지홍 기사심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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