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난 앞에만 서면 항변권 사라지는 한국 사회

입력 2023-07-24 17:42   수정 2023-07-26 12:48

박정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4명이 전국적 수해가 극심한 지난 23일 5박6일 일정으로 베트남·라오스로 출장을 떠났다가, 비난 여론이 일자 25일 조기 귀국하기로 했다. 이들은 출국 때부터 수해 기간에 해외 출장을 가는 게 맞냐는 지적이 당 내부에서도 나왔지만, “취소하면 외교적 결례”라며 강행했다고 한다.

국회의원은 자신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 공인이다. 전국적 수해 상황에서 불요불급한 해외 방문이라면 일정을 조절하는 게 맞다. 그러나 그들 말대로 상대국과 여러 달 전부터 준비해 외교 결례가 되고, 꼭 필요한 일이라면 못 갈 이유도 없다.

수해 관련 부처 중 하나인 환경부를 소관 기관으로 두고 있는 환노위원장이 끼어 있어 문제가 된다고 하는데, 그가 돌아와 수해 복구에 직접적으로 할 일이 거의 없고, 입법 역시 수해 상황에서 이뤄지기는 힘들다. 오히려 국내 여론 악화로 취소할 수 있었던 출장이라면 애초 외유성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재난만 거론되면 온 사회가 항변할 수 없는 집단 무기력증을 앓고 있다. 전통적으로 엄숙·도덕주의가 강한 데다, 세월호·이태원 참사 등에서 재난 프레임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세력에 의해 이런 경향이 고착화한 탓이다.

세월호 참사 때는 추모 기간이 지난 뒤에도 한동안 각종 행사와 외부 일정 취소·지연으로 심각한 내수 부진이 나타나는 등 온 사회가 공황장애에 빠졌다. 급기야는 사태 5개월이 지났을 때 오피니언 리더 수백 명이 정쟁 중단과 정상 사회 복귀를 촉구하는 시국선언문까지 발표할 지경이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선 경찰 조사에서도 무혐의 처분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부실 대응을 이유로 국무위원으로선 처음 탄핵소추했다. 민주당은 사건 발생 10개월 가까이 된 지금도 특별법 패스트트랙 강행 등 참사의 정쟁화에 매달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비난한 명분 역시 수재 대응이었다.

야당만이 아니다. 이번에 민주당 의원들의 해외 방문을 꼬집은 국민의힘 역시 재난의 정치화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재난에는 개인과 회사, 자치단체, 중앙정부, 나아가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의무와 책임이 다르다. 비합리적 사회일수록 마녀사냥식으로 책임을 추궁하고 남 탓을 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안타까움과 슬픔을 공감하면서도 각자 할 일은 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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