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대표 상권인 압구정로데오역 4번 출구. 이곳에 자리 잡은 카메라 매장 지하로 내려가면 비밀스러운 공간이 나온다. 삼면의 벽에 ‘에덴동산’이 펼쳐지고, 3차원(3D) 미디어 아티스트 소희의 ‘시그니처 캐릭터’인 목이 길쭉한 거인이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카메라 회사 후지필름이 마련한 복합 문화·예술 공간 ‘파티클’이다. 파티클은 전시 좀 다닌다는 아트 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핫플(핫플레이스)’이다. 미디어아트를 비롯해 사진, 회화, 설치작품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카메라 회사가 사진전을 연 적은 많지만, 이렇게 장르를 넘나드는 전시장을 낸 건 국내에서 이곳뿐이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후지필름은 왜 이런 복합 문화·예술 공간을 만들었을까.
후지필름코리아는 330㎡(100평)가 넘는 지하 공간을 사진 전시장에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바꿨다. 전시 전문 인력을 영입하고, 전시장 이름도 지었다. ‘작은 입자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자’는 뜻의 ‘파티클’로.
사진은 파티클이 다루는 여러 분야 중 하나일 뿐이다. 종이 설치작품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박혜윤 작가, 이미지를 해체하고 조합해 환상적인 디지털 콜라주 작품을 선보이는 나승준 작가, 사람과 개를 주제로 감성적인 드로잉을 그리는 이나영 작가, 전통민화를 소재로 일러스트를 그린 무직타이거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 4명이 지난해 이곳에서 전시를 열었다.
임 사장은 “과거 사진 전시만 열 때보다 관람객이 300배 이상 늘었다”며 “전체 관람객 10명 중 7명이 20~30대일 정도로 연령대도 낮아졌다”고 했다. 누적 관람객은 2년 만에 2만 명을 넘어섰다.
파티클의 성과는 후지필름코리아의 매출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임 사장은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이 갈수록 향상되면서 전문 카메라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후지필름코리아는 2016년부터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캐논, 소니, 니콘 등 경쟁사들이 타격을 본 코로나19 기간에도 후지필름코리아의 매출은 늘었다.
임 사장은 그 공을 파티클에 돌렸다. 젊은 고객이 늘면서 판매 실적을 견인했다는 설명이다. 후지필름코리아의 20~30대 고객 비중은 2020년 36%에서 지난해 69%로 급상승했다. 임 사장은 “제품 라인업이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젊은 고객이 늘어난 건 파티클 덕분”이라며 “문화사업을 통해 본업 경쟁력을 끌어올린 ‘예술경영’의 성공 사례로 자평한다”고 했다.
처음엔 “뭣 하러 이런 전시장을 만드냐”고 마땅치 않은 눈초리를 보낸 일본 후지필름 본사는 이제 파티클의 성공 사례를 다른 나라에도 적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임 사장은 “전주국제영화제와 손잡고 전시장에서 영화도 선보이는 등 한층 더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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