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공무원이 진짜로 무서운 순간은 따로 있다. 공무원에게 찍혀 ‘보복 행정’을 맞닥뜨리면 탈출구를 찾기 쉽지 않다. 공무원이 작정하고 발목을 잡으면 중소기업은 힘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귀에 걸면 귀걸이 식 각종 규제는 공무원이 양손에 움켜쥔 무적의 무기다.
‘킬러 규제 혁파’를 내세우는 현 정부에선 변화의 조짐이 있을까. 한 중소기업 대표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규제 개혁 의지를 현장에서 체감하냐’고 물었더니 “규제 개혁을 안 하겠다는 정부도 있었느냐”는 싸늘한 답변이 돌아왔다.
현 정부에서도 규제를 줄여달라고 건의하면 여전히 무리한 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현장 조사를 나와 힘들게 하기 일쑤라는 것. 여전히 규제의 ‘규’자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안되는 거 알면서 말귀를 왜 못 알아먹느냐”는 핀잔부터 “귀찮게 하면 행정조사에 나서겠다”며 서슴지 않고 으름장을 놓는 모습은 변한 게 없다고 전했다.
특히 중앙 권력이 미치는 힘이 약한 먼 지방으로 갈수록 규제 개선의 ‘약발’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하지만 규제에 신음하는 기업 대다수는 멀고 먼 지방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등록 규제 건수는 중앙부처의 약 3배, 지자체 공무원 1인당 등록 규제 건수는 중앙부처의 약 7배에 달한다.
윤 대통령은 이달 초 “기업인들의 투자 결정을 막는 결정적 규제, 킬러 규제를 팍팍 걷어내라”며 규제 혁신을 재차 주문했다. “단 몇 개라도 킬러 규제를 찾아 시행령이나 법률 개정을 통해 신속히 제거해야 한다”고 신신당부까지 했다.
대통령의 의지가 효과를 내려면 현장 공무원이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대통령이 백날 얘기해봐야 지방 공무원의 ‘보신 행정’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규제 개혁은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규제를 움켜쥐고, 규제와 공생한 공무원을 변신시키는 것은 말만으론 이뤄질 수 없다. 규제 개혁 의지가 현장에 퍼질 때까지 계속해서 독려하고 감시할 수밖에 없다.
강경주 중소기업부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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