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회사들이 영국 런던 번화가에 있는 오피스빌딩을 매입했다가 약 1400억원을 날릴 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리 인상과 재택근무 확산으로 오피스빌딩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국내 금융사가 2010년대 후반부터 집중 투자해온 해외 오피스빌딩에서 줄줄이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2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체투자운용사 베스타스자산운용은 ‘일반사모부동산투자신탁제38호’를 통해 보유한 런던 섀프츠베리애비뉴 125번가의 오피스빌딩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베스타스운용은 매각 자문사를 선정하고 다음달 8일 입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 오피스빌딩은 베스타스운용이 2018년 말 2억6700만파운드(약 4400억원)에 매입했다. 새마을금고, A증권사 등 국내 금융사가 지분(에쿼티) 투자 방식으로 1800억원을 댔고, 나머지 2600억원은 현지 금융회사에서 대출받아 충당했다.
업계에서는 이 빌딩이 매입가보다 30% 이상 싼 1억8000만파운드(약 3000억원) 수준에서 팔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년간 임차하기로 한 공유오피스업체 위워크가 올해 글로벌 금리 인상 등 여파로 위약금을 내고 떠나기로 결정하면서 대규모 공실이 발생한 영향이다.
실제 1억8000만파운드 안팎에 매각된다면 지분 투자자인 국내 금융사들은 1400억원의 매각 손실을 우선 책임져야 한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이 빌딩의 현재 가격이 매입가 대비 30% 이상 하락했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새마을금고와 함께 이 빌딩에 출자한 A증권사도 가격이 25% 하락한 것으로 추정하고 투자금의 60%를 상반기에 손실(손상차손)처리했다.
베스타스운용 관계자는 “매각을 포함해 밸류애드(가치 부가) 등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아직 입찰을 받지 않아 매각가를 정확히 산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섀프츠베리애비뉴 빌딩 매각 손실 위기가 드러나면서 국내 금융회사들이 2010년대 중반부터 몰려간 해외 부동산 시장에 대한 경고음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홍콩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빌딩(미래에셋), 독일 트리아논빌딩(이지스자산운용), 벨기에 투아종도르빌딩(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 등의 가치가 하락해 국내 금융회사들이 손실 위기에 처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유럽에서 손실 위기가 집중되는 것은 잦은 담보인정비율(LTV) 테스트 때문으로 분석된다. 유럽 은행은 대출해준 오피스빌딩에 대해 만기 전에도 수시로 LTV 테스트를 하면서 금리 인상, 공실률 상승 등으로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 투자자에게 추가 출자를 요구한다는 게 IB업계의 설명이다.
한국 투자사들이 매입한 해외 부동산은 유럽에서만 90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증권사들은 2010년대 후반 이후 유럽 부동산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증권사들은 지난 3월 말 현재 15조5000억원의 해외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유럽(영국 포함) 부동산 투자 규모는 5조2700억원에 달했다. 영국 투자금액은 1조2400억원이었다.
영국 경제 상황이 침체돼 섀프츠베리애비뉴 오피스빌딩처럼 영국 부동산의 추가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영국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높이는 ‘빅스텝’을 단행하는 등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의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 7.9%에 달하는 등 미국(3.0%)보다 4.9%포인트 높다.
한국 금융회사들이 투자한 런던의 원 폴트리 오피스빌딩도 최근 가치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산운용사인 AIP자산운용이 2018년 인수한 런던 캐논브리지하우스 오피스빌딩도 비슷한 상황이다. 당시 NH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메리츠금융그룹 등에 일부 셀다운하고 일부는 떠안은 자산이다. 운용사는 2년6개월 만기 연장에 나섰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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