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주 나락에 멘붕…"급등주 경험은 독" 현실 조언

입력 2023-07-28 09:46   수정 2023-07-28 10:00


'조바심, 기대감, 넛지, 도파민.'

최근 이어진 2차전지주 급등락 현상과 관련해 심리학·정신의학 전문가들이 꼽은 키워드다. 이번 일은 시장 여건, 종목 기초체력(펀더멘털) 등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게 주식시장을 잘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투자자의 심리와 행동을 들여다 보는 새로운 분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관련 전문가 4명에게 이번 일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차트의 유혹>(2022)의 저자 오성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살려주식시오>(2021)의 저자 박종석 연세봄정신과 원장, <투자의 심리학>(2021)의 저자 구본기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장, <주식 멘탈 투자>(2020)의 저자 송동근 전 대신증권 전무다.
FOMO 현상이 낳은 추격매수

최근 급등락한 2차전지주의 거래대금(매수금액+매도금액) 규모는 개인 투자자가 외국인이나 기관보다 훨씬 많다. 에코프로 거래대금은 이달 초부터 27일까지 58조1448억원이었고, 이 가운데 개인이 46조6019억원으로 80.1%를 차지했다. 개인끼리 사고팔며 주가를 올렸다.

개인이 급등주를 붙잡는데 뛰어든 건 '조바심'이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최근 수년간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상승세에 올라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 재산 격차가 벌어졌고, 지난해부터는 부동산 경기가 불확실해져 "'영끌'로 집을 사서 따라붙겠다"고 마음 먹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큰 조바심을 가진 사람에게 급등주는 '동아줄'처럼 여겨진다. 오 교수는 "돈을 벌고 싶다는 욕구가 사회적으로 매우 커졌고 자산가격 상승에 대한 '포모(FOMO: 뒤처짐에 대한 공포)'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며 "최근 증시와 집값 상승세가 모두 지지부진했는데 이럴 때 특정 종목에 관심이 쏠리면 급등주가 되기 쉽다"고 설명했다.
'미래 산업' 기대가 주가 올려

수많은 종목 중 에코프로 등 일부 2차전지주가 FOMO의 대상이 된 이유는 뭘까. 그 이유에 대한 전문가들의 설명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증시가 지지부진했던 타이밍에 이들 종목은 예외적으로 올라 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고, 산업의 내용 측면에서도 이들은 '미지의 영역'에 있어 기대감을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송 전 전무는 "증시 흐름이 지지부진하면 소수 종목이 좋은 흐름을 보였을 때 거기로 관심이 쏠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구 소장은 "2차전지 기업이 미래 산업을 주도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지만 아직 그 실체는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익숙한 구경제 산업주는 아무리 실적 개선 기대감이 높아도 수백% 이상 급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가가 급등해 펀더멘털과의 괴리가 커지면 급락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모든 급등주가 이런 전철을 밟는 건 아니다. 월가 전문가들에게 수년째 고평가 지적을 받으면서도 계속 오르는 테슬라가 대표적 사례다. 테슬라가 급락을 피할 수 있었던 건 전기차 판매량 증가로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구 소장은 "2차전지 종목도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고평가된 주가'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오 교수는 "기대감을 살짝 흔드는 넛지(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사소한 차이)로도 주가는 급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급등 경험은 '독'으로 돌아와

전문가들은 "급등주를 미리 알아보는 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급등주에 올라타지 못했어도 이를 아쉬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역시 공통된 지적이다. 급등주에 올라타는 경험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 사람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박 원장은 "최근 급등주에 대한 개인의 폭풍 매수는 과도한 도파민 자극이 야기한 충동 구매에 가깝다"고 했다. 그는 "욕망이 지나치게 커지면 뇌의 전두엽 기능이 평소보다 30% 이상 떨어지기 때문에 합리적인 판단과 사고를 할 수 없게 된다"며 "그러면 평소 절대 하지 않았을 빚투, 초단타 매매 등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박 원장도 한때 주식 생각만 하느라 직장에서 해고됐을 정도로 심각한 주식 중독을 경험했다.

오 교수는 "빚투는 절대 삼가야 한다. 빌린 돈으로 급등주에 올라타는데 성공하면 도파민 자극이 훨씬 커지기 때문"이라며 "도박으로 큰 수익을 보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한번 급등주의 맛을 보면 앞으로도 계속 위험 투자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는 "수익이 아닌 손실을 보는 경우 조바심이 커져 당장 이를 만회하고 싶은 생각에 단타 매매를 하다가 더 크게 잃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송 전 전무는 "2000년께 IT버블이 꺼지며 주가가 폭락했던 것처럼 미래 산업이라고 해도 주가가 계속 오르는 건 아니다"라며 "어떤 종목이 급락을 피해갈지 스스로 알아볼 수 없다면 급등주에 관심 갖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박 원장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면 평소에 자신의 욕망과 불안을 다스리는 훈련을 해야 한다"며 "리딩방 등 무분별한 정보로부터 거리를 두고 빚투를 삼가야 한다"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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