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이 해외 발전소 건설사업에 자금을 댔다가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한 데 대한 보험금 수령을 두고 한국무역보험공사와 벌인 장기 소송전에서 6년만에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이 원심을 깨고 손을 들어주면서 보험금을 받을 길이 열렸다는 평가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재판장 이흥구 대법관)는 하나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간 보험금 소송에서 최근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소송은 하나은행이 2010년 중국 기업 BBM테크(상해남조과학기술고분)에 바이오매스 발전소 건설자금을 빌려주는 한도대출 계약을 맺으면서 비롯됐다. 이 은행은 그해 9월과 2011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총 3874만달러를 BBM테크에 대출해줬다. 하지만 BBM테크는 2013년 12월말까지 갚아야하는 원리금 4815만달러를 상환하지 못했고, 하나은행은 2014년 무보에 해외사업금융보험 계약에 따른 보험금 1005만달러(약 120억원)를 청구했다.
무보는 하나은행 측에 책임이 있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BBM테크의 발전소 사업승인서가 작성된 지 1년이 넘어서 정식 착공에 들어가면서 사업승인 효력이 사라진 것을 알고서도 대출을 했고, BBM테크가 제시한 계약이행보증서가 위조됐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BBM테크가 기한 마지막 날에 O&M업체를 선정하는 등 채무불이행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 시점에 두 번째 대출을 해준 사실도 지적했다. 이같은 대응에 하나은행은 2014년 보험금 청구소송으로 맞서며 법적분쟁이 시작됐다.
1심은 하나은행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발전소 건설 관련 EPC 계약이 2010년 8월 체결됐지만 사업승인을 받은 2008년 착공식이 열렸고 그 후 건설을 위한 각종 공사가 진행됐다는 점을 근거로 사업승인이 유효하다고 봤다. 무보 측이 제시한 다른 주장들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2심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사업승인서 효력이 없어졌음에도 하나은행이 대출을 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BBM테크가 중국 담보법에서 요구한 토지 근저당권과 주식 질권에 관한 대외담보등기를 하지 않으면서 하나은행이 보험계약 약관상 위험담보장치 관련 법률을 위반하게 됐다고도 봤다. 계약이행보증서 위조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것과 채무불이행 위험이 큰 시기에 2차 대출을 한 것이 보험계약자의 손실 방지·경감 의무를 위반했다는 무보 측의 주장도 인정했다.
패소한 하나은행은 그 후 6년여간 대법원에서 법리다툼을 벌인 끝에 반전을 만들었다. 이 은행은 2014년 6월 중국의 ‘국경간 담보 외환관리규정’ 시행으로 대외담보등기가 더 이상 담보계약 효력발생의 필수요건은 아니게 됐다는 점을 내세워 승소했다. 대법원은 “과거 하나은행이 시행사를 상대로 제기한 중재에서도 중국 국제경제무역 중재위원회가 ‘BBM테크의 토지저당권과 주식질권은 중국 물권법상 설정등기를 마쳤을 때 유효하게 성립됐다’고 판단했다”며 “무보 보험 약관에 있는 위험담보장치의 효력 발생이란 조건은 충족됐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하나은행이 손실 방지·경감 의무를 위반했다는 무보 측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해당 의무에 사고가 나기 전 대출을 해줄 때 주의해야 하는 것까지 포함한다고 해석하더라도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선 따로 정하지 않았다”며 “이처럼 보험 약관이 다의적으로 해석되고 각각의 해석에 합리성이 있을 때는 고객에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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