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프랑스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유럽을 넘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스타트업과 관련된 모든 구성원들이 연결돼 있는 거대한 무브먼트인 ‘라 프렌치 테크(La French Tech)’가 있습니다. 김성준 렌딧 대표가 한경 긱스(Geeks)에 프랑스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한 이야기를 현지 전문가들과 함께 생생하게 전해왔습니다.
“비바 코리아! 한국 스타트업과 창업자들이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돋보이는 존재로 우뚝 선 모습이었어요. 행사 기간 내내 전 유럽에서 참여한 스타트업과 투자자, 그리고 기관 담당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는 모습이 정말 자랑스러웠고, 유럽 진출에 대한 보이지 않는 장벽 또한 많이 허물어져서 앞으로 유럽으로 진출하는 한국 스타트업이 크게 늘어날 것 같다는 기대가 가득한 행사였습니다.”
지난 6월 14~17일 나흘 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비바테크 2023’에 참여했던 코렐리아캐피탈 한국팀이 전해 온 현장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비바테크’는 2016년 시작돼 매년 열리는 혁신과 스타트업을 위한 콘퍼런스다. 프랑스의 다국적 광고 홍보대행사인 퍼블리시스 그룹(Publicis Group)과 프랑스 최초의 일간경제신문 레에코(Les Echos)가 주최한다. 원래 행사명은 ‘비바테크놀로지(VIVA Technology)’지만, 모두가 줄여서 비바테크라고 부른다. 올해 7회째를 맞이한 비바테크는 이제 전 유럽을 대표하는 스타트업-테크 이벤트가 됐다.
올해 비바테크2023에서 한국은 단연 돋보이는 국가였다. ‘올해의 나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비바테크는 해마다 주빈국을 선정해 그 나라의 혁신 산업계를 조명한다. 올해의 나라로 선정된 만큼 한국관은 행사장 중앙에 자리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역대 최대 규모로 전시관을 꾸린 한국은 참가 기업 역시 주최국인 프랑스 다음으로 가장 많았다. 창업진흥원, 한국디자인진흥원, 부산·울산·경남창조경제센터 등의 기관과 KT, 삼성 등 대기업이 선정한 45개 스타트업이 한국관에 전시 부스를 마련했다. 한국관 옆에는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이 마련한 별도의 전시관도 꾸려져 총 15개 스타트업이 참여했다. 그밖에도 여러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들이 자체적으로 비바테크를 찾아 유럽 투자자들과 바이어, 소비자들에게 기술력을 홍보했다.
역대급 규모를 자랑한 비바테크의 성장세는 데이터에서도 잘 나타난다. 2016년 첫 해 참여 스타트업 5000개사, 관람객 약 4만5000명이었던 데 비해, 올해 비바테크에는 174개국에서 1만1400개의 스타트업이 참여해 총 2800개의 부스가 운영됐다. 행사장에 다녀간 사람은 15만명, 온라인 등록 관람객까지 포함하면 무려 40만5000여 명이 비바테크 2023을 함께했다고 한다.
프랑스 스타트업 생태계의 중심 '라 프렌치 테크'
프랑스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이렇게 유럽을 넘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배경에는 스타트업과 관련된 모든 구성원들이 연결돼 있는 거대한 무브먼트인 ‘라 프렌치 테크(La French Tech)’가 있다. 2013년 당시 프랑스 중소기업디지털경제부 장관이었던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 현 코렐리아캐피탈 대표에 의해 본격화된 정부 주도 스타트업 생태계다. 라 프렌치 테크는 프랑스의 스타트업 현장이며, 스타트업, 투자자, 정책 입안자, 커뮤니티 구축자를 하나로 모으는 독특한 운동이기도 하다.프랑스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 정책, 특히 해외 스타트업 지원 정책에 대해 검색하던 중 라 프렌치 테크 홈페이지를 알게 됐다. 제일 놀라웠던 점은 살아 움직이는 듯한 현황을 보여주는 스타트업 데이터베이스였다.
첫 화면의 대시보드에는 현재 인증된 스타트업의 수, 종사자 수는 물론, 벤처캐피털과 연도별 투자 규모가 라운드별로 구분돼 있다. 세부 메뉴에서는 스타트업은 물론 각 분야별 프랑스 기업들, 투자자, 액셀러레이터, 대학별 창업 관련 데이터를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A대학교의 DB에 들어가면 현재까지 이 학교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의 수부터 라운드별 투자 유치 현황, 엑시트 현황은 물론 심지어 유니콘이 된 기업의 수까지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세밀한 수준의 데이터까지 방대한 규모로 구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역시 라 프렌치테크의 힘이 크게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현재 프랑스 전역에 13개 프렌치테크 수도와 45개의 프렌치테크 커뮤니티가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이 네트워크는 이미 전세계 100개 도시로 퍼져나가 65개의 커뮤니티가 활동 중이다.
지도에서 볼 수 있듯 서울에도 '라 프렌치테크 서울'이 진출해 활동 중이다. 이 거대한 네트워크의 실질적인 모습을 좀 더 알고 싶었다. 얼마 전까지 라 프렌치테크 서울의 대표를 지낸 솔로몬 무스(Solomon Moos) 유라제오 한국 대표를 찾았다.
다음은 솔로몬 대표가 전해준 라 프렌치테크에 대한 이야기.
<i>김성준(필자, 이하 SJ) : 프랑스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살펴보던 중 라 프렌치 테크를 보고 매우 놀랐다.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정부 주도의 스타트업 지원 정책으로 보인다. 라 프렌치테크는 무엇인가?
솔로몬 무스(이사 솔로몬) : 라 프렌치테크는 ‘커뮤니티의 커뮤니티’다. 스타트업, 투자자, 정책 입안자, 커뮤니티 빌더를 한 데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매우 독특한 무브먼트다. 현재까지 전세계 약 100개 도시에 진출했으며, 그 중 라 프렌치테크 서울은 프랑스 외 지역에서는 가장 큰 커뮤니티 중 하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보면, 전문적인 자문, 자금 조달을 위한 네트워크 제공, 세금 공제 프로그램, 프랑스 안팎의 인재 네트워크 확보 등 다양한 종류의 액셀러레이팅 및 인큐베이팅 프로그램들을 보유하고 있다. 장관 시절에 라 프렌치테크를 주도한 플뢰르 펠르랭 코렐리아캐피탈 대표는 프랑스에 실리콘밸리나 이스라엘처럼 아주 역동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싶었지만, 그들을 모방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스타트업이 성장하는데에 필요한 모든 측면을 포괄할 수 있는 스타트업 친화적인 생태계를 조성해 보기로 결심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현재의 라 프렌치테크다.
SJ : 얼마 전까지 라 프렌치테크 서울의 대표로 활동했다. 서울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
솔로몬 : 라 프렌치테크는 현재 전 세계 100개 도시에 지부를 두고 63개의 프렌치 테크 커뮤니티를 운영 중이다. 이들의 역할은 각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성화시키며, 전 세계 스타트업을 프랑스로 연결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서울은 그 중 가장 큰 프렌치테크 커뮤니티 중 하나다. 양국의 스타트업, 기업, 벤처캐피털, 정부가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정보를 제공한다. 다양한 네트워킹 행사가 자주 개최되고 있다.
SJ : 홈페이지에 소개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살펴봤다. 그 중 해외 스타트업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에 소개한다면?
솔로몬 : 여러 지원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소개하고 싶은 것은 국제 기업가 및 스타트업 창업가가 프랑스에서 4년 이상 거주하고 일할 수 있는 프랑스 기술 비자다. 프랑스에서 일하고자 하는 창업자뿐 아니라, 직원과 투자자 모두에게 열려 있다. 배우자 및 미성년 부양 자녀까지 함께 할 수 있으며, 다른 나라의 관련 제도와 달리 학력 관련 요건이 없다.
프랑스어와 영어로 제공되는 종합 원스톱 정보 플랫폼 ‘웰컴 투 프랑스’도 소개하고 싶다. 프랑스 테크 생태계에 합류하기 위해 프랑스로 이주하는 것을 돕고, 프랑스 테크 비자를 보완할 수 있는 탤런트 패스포트 거주 허가 신청 절차를 디지털화하고 간소화했다. 그밖에도 라 프렌치테크에서는 외국 스타트업들이 프랑스에 정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한다. 법률 및 행정 절차에 대한 것들이나, 현지 네트워크 및 리소스와의 연결 등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i>
실제로 라 프렌치테크 홈페이지에 소개된 프로그램들은 아주 다양하다. 정책 방향성이나 산업별로 지원 방향성을 담은 펀드가 운영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정부의 미래 투자 전략인 ‘프랑스2030’의 방향성에 따라 125개의 혁신 기업을 선정해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나, 그린테크, 농업 분야, 보건 분야 등에서도 20개 이상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정부 주도의 스타트업 지원 외의 민간 부문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 엑셀러레이터에 대해 살펴봤다. 라 프렌치테크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현재 프랑스에는 약 180여 개의 액셀러레이터가 활동 중이다. 이 중 프랑스 1위 경영대학원으로 꼽히는 HEC파리의 ‘혁신 및 기업가정신 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HEC인큐베이터 파리(Incubateur HEC Paris)의 필라델피 크넬올프 운영 파트너와 서면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서면 인터뷰의 내용.
<i>SJ : HEC인큐베이터 파리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요건과 절차가 궁금하다.
필라델피 크넬올프(이하 필라델피) : 한국의 스타트업들에게 HEC인큐베이터를 소개할 수 있어 무척 기쁘다. HEC인큐베이터에 지원하려면 공동 창업자 중 최소 한 명은 HEC파리와의 연계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인큐베이션 첫 3개월 이내에 재학생이거나, 졸업생 또는 검증된 HEC MOOC 수료증 소지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 프로그램의 목표는 창업가가 혼자서 1년 동안 달성할 수 있는 성과를 3개월 이내에 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은 3개월 씩 1년에 3번 운영하고 있다.
SJ : HEC인큐베이터에 선정되는 스타트업들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나?
필라델피 : 우선 장소에 대한 지원이다. 2017년 7월부터 인큐베이터에 입주하는 모든 기업은 스테이션 F에 입주하고 있다. 파리 13구에 위치한 스테이션F는 연면적 700㎡에 200개의 책상을 갖춘 대규모 협업 공간이다. 또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사업에 필요한 다양한 워크숍과 전문가들의 1대1 오피스아워 등이 제공된다.
SJ : 그렇다면 현재 HEC 인큐베이터의 지원은 HEC파리의 재학생 및 졸업생들만 가능한 것인가?
필라델피 : 그렇지 않다. 우리가 운영하는 핵심 프로그램들을 점점 더 많이 비 HEC 스타트업과 해외 스타트업들에게 열고 있다. 특히 한국 스타트업들과는 창업진흥원,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 함께 전담 매니저를 두고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니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 이 프로그램에는 올 12월에 열리는 코리아스타트업센터 글로벌 데모데이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포함되어 있다.
그밖에도 우리 기관의 여러 파트너사들과 함께 진행하는 스타트업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해외 스타트업에도 열려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로레알과 함께 뷰티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로레알 뷰티 테크 아틀리에’, 토털 에너지와 함께 친환경 에너지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토털 에너지 온’, 농업 스타트업을 위한 ‘HECTAR’, 메타가 지원하는 웹3.0 스타트업 프로그램, ICADE가 지원하는 부동산 스타트업 프로그램인 ‘어반 오딧세이’ 등을 소개하고 싶다.</i>
현지 전문가들이 가장 강조한 점은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와 멀티 컬처에 대한 적응’이었다. EU로 통합된 경제권을 갖고 있으며,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한데 모여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인 유럽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사업을 이끌어 가는데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이번 컬럼을 위해 인터뷰에 응해준 솔로몬 무스 유라제오 한국 대표 역시 “유럽 시장과 소비자 행태를 파악하고 타깃 시장을 정의하거나, 현지 규제 분석 등을 하는 데 있어, 현지 인재를 채용하고 라 프렌치테크와 같은 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 유럽 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갖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조언을 남겼다.
프랑스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된 건 올 3월의 일이다. 한경 긱스에 기고할 컬럼의 주제로 ‘프랑스와 독일 투자자가 바라보는 한국 스타트업’을 잡아놓은 후, 양국의 스타트업 씬에 대해 살펴본 것이 시작이다. 흔히 스타트업 하면 실리콘밸리, 그리고 이스라엘과 북유럽의 핀란드 정도를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잠깐 둘러본 프랑스와 독일 스타트업 생태계의 발전상은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해외 스타트업과 인재들을 자국으로 유치하고자 하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창업을 꿈꾸고 있거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해외 여행의 기회가 있을 때 마다 현지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둘러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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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렌딧 대표
세 차례의 창업 경험을 가진 연쇄 창업가. 첫 창업은 2009년에 했던 기부의 일상화를 위한 사회적 기업 1/2 프로젝트. 두 번째는 2011년 스탠퍼드대학원 재학 중 창업 수업에서 만난 팀과 함께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했던 스타일세즈(StyleSays)다. 세 번째 창업한 렌딧은 사업 자금 마련을 위해 한국에 돌아와 개인 대출을 해본 경험을 통해, 중금리 대출이 부재하다는 사회적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한 회사다.
실리콘밸리에서 경험한 창업가 정신과 혁신적인 조직의 기업 문화를 렌딧에 이식하고 적용해 전통적인 금융 인재들과 혁신적인 IT 인재들이 성공적으로 융합한 테크핀(TechFin) 조직으로 성장시켜 나가고 있다.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으며 스탠퍼드대학원 기계과 프로덕트 디자인 석사 전공 도중 자퇴하고 스타일세즈를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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