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강화로 제조사 압박, 생존 경쟁으로 내몰아
배터리 전기차(Battery Electric Vehicle)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이른바 시장 확대와 축소의 예측 대립이다. 축소를 전망할 때 나오는 근거는 최근 살 사람은 이미 샀고 새로운 수요 창출의 방해 요소로 보조금 감축과 인프라 부족을 꼽는다. 반면 현상만 가지고 BEV 시장이 위축된다는 해석은 매우 단편적이라는 의견도 팽배하다. 제조사 관점에서 BEV 판매를 늘리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기업이 문을 닫도록 만드는 강력한 규제가 속속 도입되고 있어서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과 유럽연합이다. 미국 NHTSA는 개별 기업이 연간 판매하는 자동차의 평균 효율을 지금보다 18% 강화하기로 했고 EPA는 판매하는 전기차의 인정 효율을 평균 70% 가량 끌어내렸다. 이렇게 높아진 기준을 내연기관만으로 충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미국은 IRA 성과를 위해 규제 도입을 강력히 몰아붙인다. 설령 제조사 폐업이 있을지라도 수송 부문 르네상스의 주도권을 갖겠다는 의지가 확실하다. 물론 유럽연합도 예외는 아니다. 아예 2035년부터 내연기관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탄소 배출량 기준도 낮춰 인위적으로 내연기관 판매 비중을 줄이라고 말한다. 유럽 내 다양한 국가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지만 개의치 않는다.
지금의 상황은 사실 과거 마차 시대에서 증기기관으로 전환될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먼저 비슷한 점은 수송 부문의 핵심 동력이 말(馬)에서 증기기관으로 바뀔 때 대형 마차 사업자들의 극심한 저항이다. 변화를 막기 위해 입법 로비는 물론이고 정치가와 손잡고 증기기관의 확산을 막았다. 심지어 증기기관 자동차의 속도가 말(馬)보다 빠르면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증기기관은 내연기관으로 발전하며 이동 속도를 높였고 덕분에 이동 시간 축소를 얻게 된 소비자는 내연기관을 반겼다. 결국 시장 논리에 따라 마차를 고집했던 기업은 대부분 도태됐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은 규제의 강도다. 당시 마차 쇠퇴는 규제보다 시장의 힘이 훨씬 컸다. 아무리 규제를 해도 내연기관 이동의 편의성과 경제성을 맛본 소비자가 다시 마차로 돌아가지 않으면서 내연기관 수송 산업은 점차 주력으로 자리잡게 됐다. 그런데 지금의 전기차 확산은 소비자 요구가 아닌 규제의 힘이 훨씬 크게 작용한다. 시장의 힘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규제를 통해 제조사의 행동을 촉구하는 형태다. 시장에서 전기차를 찾지 않아도 제조사가 강제적으로 판매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만약 판매를 못해 평균효율을 맞추지 못하면 엄청난 벌금이 부과된다. 따라서 제조사에게 전기차는 팔기 싫어도 팔아야 하고 손해가 나도 팔아야 하며 찾는 소비자가 없어도 팔아야 한다.
퇴로도 없다. 규제는 해마다 놀랄 만큼 강화되는데 이때마다 그 어떤 제조사도 반박하지 못한다. 점점 뜨거워지는 여름, 극한 호우, 빙하 축소, 극한 겨울 등이 보고될수록 오히려 규제 강화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제조사의 전기차 판매 압박은 더욱 강해진다. 아직은 내연기관이 주력이어서 분기별 실적 등이 나올 때마다 막대한 이익 등을 언급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익의 수식어는 '막대한'에서 '초라한'으로 바뀔 수 있다. 더욱이 규제 강화에 따른 판매 압박은 모든 자동차회사에 동시에 가해지는 것이어서 가격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데 마땅한 돌파구도 없다. 한 마디로 벌금을 내든가 아니면 전기차 이익을 포기하고 저렴하게 시장에 공급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력이다.
이 과정에서 제기되는 일자리 문제, 협력사의 어려움 등은 부차적이다. 소비자들의 전기차 선호도가 낮아질수록 제조사는 가격 인하를 강행하고 정부는 보조금을 줄인다. 대신 충전 인프라는 확대한다. 그래도 구매 욕망이 기대만큼 발생하지 않으면 최후 선택으로 내연기관 판매를 고의 축소해야 한다. 결국 어떤 방법을 쓰든 내연기관은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을 충분히 알면서도 글로벌이 규제를 밀어붙이는 배경은 세상의 그 어떤 가치보다 인류의 미래 존속이 우선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대차와 기아의 경우 그 동안 내연기관 사업으로 국가에 기여도 많이 하고 일자리 창출 역할이 컸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제는 과거일 뿐이라는 얘기다. 전기차를 팔수록 손해가 커서 공장 문을 닫으면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고 하소연해도 글로벌에선 무용지물이다. '기후'는 어느 기업이 문을 닫는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제품의 탄소 배출량만 볼 뿐이다.
따라서 전기차 규제 강화 효과는 올해를 기점으로 빠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사고 싶은 사람이 줄어들수록 가격은 내려가고 이익 감소는 제조사가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시대는 꽤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사라지는 기업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산업이 지속되는 시대엔 '대마불사'가 통할 수 있지만 전환 시대에선 '대마교체'가 가능해서다.
권용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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