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손에 잡히는 독립투쟁사와 건국사는 없었을 듯하다. 이보다 쉬우면서 통찰적인 20세기 국제정치 해설서도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승만-트루먼, 히틀러-롬멜 등 역사 속 수많은 인물의 생생한 면모는 수십 명의 평전을 읽는 느낌을 준다. 오늘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전해준다.
편견이 난무하는 혼돈의 시대에 팩트의 힘을 확인시켜주는 것도 장점이다. 독립운동, 2차대전사, 한·중·일의 나라 만들기, 미국·유럽 정치사 등 한반도를 둘러싼 숨가빴던 사건들이 잘 차려진 코스요리처럼 줄지어 등장한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과 사실의 이면, 관점이 깨알처럼 쏟아진다.
역사 특종도 담겼다. 1945년의 얄타회담 밀약을 우남에게 제보해 결과적으로 한국 건국에 기여한 에밀 구베로라는 인물이 미국 언론인 에밀 헨리 고브로임을 밝혀냈다. 반전 팩트도 수두룩하다. 매카시즘으로 잘 알려진 조지프 매카시는 극우주의자가 아니라 세계 평화에 기여한 이타주의자였음을 방대한 자료로 설명한다.
비감한 선조들의 투쟁사가 쟁쟁하다. 이봉창 의사는 거사 직전 임시정부를 이끌던 김구를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에서 투척할 폭탄을 두 손에 들고 환하게 웃는 사진을 남겼다. 작가는 “스스로 죽음을 찾아가면서 환히 웃음 짓는 것, 그것이 독립운동이었다”며 경외했다. 무명들의 투쟁도 먹먹하다. 생의 마지막 순간, 독립운동에 쓰라며 평생 저축한 돈을 이승만에게 건네고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에서 숨을 거둔 조선인 노동자가 부지기수였음을 전한다.
복 작가는 이승만을 ‘혁명가’로 규정했다.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꾸려는 급진주의자였다”고 썼다. 동시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원대한 관점과 창의적 실천력이 어느 혁명가보다 월등하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닫은 순간의 소감은 미안함과 부끄러움이다. 우리가 도달한 정신과 누리는 물질을 전해준 주역과 그들의 시대에 무지했다는 깨달음이 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그 자책은 왠지 모를 안도감과 동시적이다. 누군가의 필생의 노력으로 역사를 보는 새롭고 온전한 큰 창을 갖게 됐다는 든든함이리라. 경박함이 칭송받는 부박한 시대를 견딜 힘을 주는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책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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