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할리우드의 배우들과 작가진이 63년 만에 동반 파업을 벌이면서 굵직한 영화·드라마 이벤트가 차질을 빚고 있다. TV 시상식 분야에서 미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에미상이 연기되는가 하면, ‘듄: 파트 2’ 등 대작들의 개봉도 미뤄질 조짐이 보인다. 이들의 파업은 영화·드라마 제작 과정에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르게 침투하면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30일 대중문화 전문매체 버라이어티 등에 따르면 오는 9월 18일 열릴 예정이었던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어워즈’의 일정이 연기됐다. 미국 TV예술과학아카데미(ATAS)가 주관하는 에미상은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미국 최고 권위의 TV 시상식이다. 에미상이 연기된 건 2001년 9·11 테러 이후 처음이다.
에미상 연기는 할리우드 양대 노조인 미국작가조합(WGA)과 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의 동반 파업 때문이다. 지난 5월 WGA는 “영화·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AI를 활용하면 작가들이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반발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이달부터는 SAG-AFTRA도 총파업에 들어갔다. 두 노조가 함께 파업을 시작한 건 1960년 영화산업 종사자 처우 개선을 요구한 것 이후 처음이다.
파업 여파에 시달리고 있는 건 에미상뿐만이 아니다. 최근 버라이어티는 워너브러더스가 영화 ‘듄: 파트 2’의 개봉일을 올해 11월에서 내년으로 미루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버라이어티는 “파업으로 인해 올 하반기 개봉 예정인 마블의 ‘더 마블스’, ‘헝거게임’ 시리즈 속편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도 개봉일이 미뤄질 수 있다”고 했다.
이미 개봉에 나선 작품들도 홍보에 차질을 빚고 있다. 스타 배우들이 파업을 지지하면서다. 미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바비’의 주연 마고 로비는 파업 동참을 위해 다음달 2일 예정돼 있었던 일본 현지 홍보 행사에 불참하기로 했다. ‘미션 임파서블 7’의 톰 크루즈도 같은 이유로 일본 현지 행사에 불참했다.
영화계에서는 노조 파업이 쉽게 잦아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최근 넷플릭스가 고액 연봉의 AI 전문가 채용 공고를 올리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 SAG-AFTRA 소속인 영화배우 프란 드레셔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강요된 비즈니스 모델로 인해 우리는 생계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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