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급한 불을 껐을 뿐 더 큰 숙제가 남아 있다.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일이다. 이제 경제정책의 초점을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맞춰야 한다.
단기적인 경기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좀 더 시야를 넓혀 보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서 직선제 이후 각 정부 임기 중 평균 성장률을 살펴봤다. 노태우 정부 9.2%, 김영삼 정부 7.6%, 김대중 정부 5.6%, 노무현 정부 4.7%, 이명박 정부 3.3%, 박근혜 정부 3.0%, 문재인 정부 2.3%였다. 진보냐 보수냐에 상관없이 시간이 흐를수록 성장률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이런 흐름을 벗어나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3~2027년 잠재성장률을 2.0%로 전망한다. 장기 시계는 더 어둡다. 생산성 혁신이 없다면 한국의 장기 경제성장률은 2030년 1.1%, 2040년 0.5%로 떨어지고 2050년엔 성장이 멈출 것(0%)이란 게 KDI의 경고다.
현재 한국의 생산성은 선진국에 못 미친다. 기재부가 이달 초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보면 미국의 생산성을 100으로 봤을 때 한국은 61.4에 불과하다. 독일(92.7), 프랑스(90.9), 영국(78.7), 일본(65.6) 등 주요 선진국보다 낮다. 게다가 한국은 이미 인구 감소기에 접어들었다. 1949년 인구주택총조사 이후 줄곧 늘던 총인구는 2021년 처음 감소세로 전환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줄어들었다. 전체 인구에서 생산가능인구 비율이 늘면서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인구 보너스 시대가 끝나고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는 줄고 노인 인구가 늘며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인구 오너스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한국은 지금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에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선박, 철강, 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구조개혁이 없다면 미래에도 지금처럼 경제 강국으로 남아 있긴 어려울 것이다. 작년 말 골드만삭스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2050년 세계 경제 순위에서 15위 밖으로 밀려나는 것으로 나온다.
이런 걸 진짜 국가적 위기라고 한다. 이런 위기는 재정·통화정책으로 풀 수 없다. 고통스럽더라도 구조개혁으로 체질을 개선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구조개혁은 더디다. 현 정부의 노동개혁은 주 69시간 프레임에 갇혀 첫 단추부터 꼬였다. 연금개혁은 시작도 못 했고, 교육개혁은 구체적으로 뭘 하겠다는 건지도 모를 지경이다. 문재인 정부는 아예 개혁을 안 했다. 현 정부는 개혁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추진력이 부족하다.
먼 미래 이익보다 눈앞의 손해에 민감한 건 인간의 생리에 가깝다. 이른바 시간 선호다. 기득권의 반발도 불 보듯 뻔하다. 구조개혁이 어려운 이유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리더는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국가를 살리는 시대적 과제를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결국 그런 리더를 평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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