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단 빈자리, 업종 가려받아…남은 기업 죽을 맛

입력 2023-07-30 18:24   수정 2023-08-07 20:31


“염색 업체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산단에 남은 업체들의 폐수처리시설 이용 분담금이 크게 늘었습니다. 염색업에 국한하지 말고 세탁업과 같은 다양한 업종으로 입주사를 확대해야 합니다.”

지난 28일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한 염색업체 대표의 목소리에서 깊은 시름이 묻어났다. 경기 북부에 있는 A산업단지는 20여 년 전 염색업 위주로 중소기업 70여 곳이 모여 조성됐다. 지난해부터 원자재·에너지 가격 급등 등으로 산단 입주 업체 중 30%가량이 휴폐업하면서 크고 작은 문제가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시급한 과제는 하루 처리능력 2만3000t 규모 공동 폐수처리시설 이용 분담금. 그동안 폐수처리시설을 이용하는 업체가 비용을 갹출해왔지만, 산단이 공동화하면서 잔존 기업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일부 업체는 매월 억 단위의 적자가 쌓이는 실정이다.

부산 녹산산단과 신평장림산단도 비슷한 어려움에 처했다. 염색 업체가 떠난 빈자리를 폐수처리가 필요 없는 제조업체가 대체하면서 폐수처리시설 가동률이 50% 이하로 떨어졌다. 전국 섬유염색업종 공단 가동률은 매년 하락 추세여서 비슷한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잔존 업체들은 염색업이 아니더라도 폐수시설을 이용할 업체가 들어온다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염색업체의 자구 노력을 산단 입주 규제가 발목 잡고 있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의료기관세탁물처리업 등 ‘산업용 세탁업’은 한국표준산업 분류상 서비스 업종으로 분류돼 산업단지에 입주할 수 없다. 염색업 전문 산단의 입주 가능 업종은 한국표준산업 분류상 △섬유제품 염색 △기초 화학물질 제조업 △기타 금속 가공제품 제조업 등으로 한정돼 있다.

관계 기관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경기도와 부산시 관계자는 “규제 완화 건의가 있으면 취합해 산업통상자원부에 전달하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놨다. 산업부 관계자는 “규제를 섣불리 풀었다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했다.

소극적인 행정으로 규제 개선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업체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한 염색업체 관계자는 “산단 내 기업이 다 폐업하면 ‘염색 산단’을 유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허탈해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대통령이 백날 얘기해 봐야 공무원들의 ‘보신 행정’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규제 개혁은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꼬집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선 공무원의 의지가 규제 개혁에서 가장 중요하다”며 “개혁에 앞장선 공무원에게 승진과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정책이 효과를 볼 것”이라고 했다.

공무원 수 증가로 규제의 장벽이 높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기업 연구기관인 파이터치연구원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에선 5년간 공무원 수가 1만2000명 증가하면서 규제량이 1.4% 늘어났지만, 문재인 정부 5년간엔 공무원이 13만 명이나 늘면서 규제량도 14.7% 급증했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장은 “공무원이 늘어나면 규제 장벽을 높여 경제 활력을 저하한다”고 꼬집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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