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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린 에버트레져 대표는 중국건설은행 등에서 외환딜러로 5년간 일했다. 로스쿨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서는 핀테크, 메타버스 스타트업에서 다시 4년을 근무했다. 이런 경력을 뒤로 하고 창업 생각을 굳힌 건 지난 2월이다. 극단 출신으로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기도 한 그는 자금난을 겪는 예술가의 미래 소득 가치를 토큰증권(ST)으로 발행하는 플랫폼을 기획했다. 조 대표는 “2월 정부의 토큰증권발행(STO) 가이드라인이 나오고 생태계가 성장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며 “현재 동양화·조각 등 미술작가 20명, 독립영화를 만드는 기획사와 계약을 마쳤다”고 말했다.
#. 신명준 하이프 대표는 태양광 엔지니어 출신이다. LG전자 등 대기업에서 10년간 근무했다. 해외를 자주 오간 덕분에 2019년부터 일찌감치 조각투자 창업에 관심을 가졌다. 4년간 준비해온 아이템을 꺼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정부의 STO 가이드라인을 확인하고서다. 동네 맛집과 카페에 조각투자를 도입해 자금난을 겪는 소상공인과 동네 주민을 연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 대표는 “직접 배달일까지 뛰며 점주들을 만나고 있는데 반응이 긍정적”이라며 “가이드라인에 대한 우려는 있지만 사업에 뛰어들기엔 충분했다”고 했다.
정부의 STO 제도 개정 윤곽이 드러나면서 조각투자 사업 분야에 뛰어드는 초기 창업가가 늘고 있다. STO는 실물 자산을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 형태로 발행하는 방식으로, 조각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다. 조각투자 사업 아이템은 기존 지식재산권(IP), 부동산 분야를 벗어나 한층 다양화하는 추세다.
○조각투자 인가 신청, 4배 ‘훌쩍’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STO 규제 샌드박스(혁신금융서비스) 신청 현황에 따르면 2019년 이후 컨설팅 단계에 들어간 59건의 신청 업체 중 올해 신청서를 제출한 곳은 34%(20건)에 달했다. 해당 샌드박스는 금융위 산하 한국핀테크지원센터에서 1차 컨설팅을 진행하고, 적정 요건을 갖춘 업체가 금융위로 넘어가 인가를 받는 구조다. 센터 관계자는 “통상 한 달에 1건 정도 신청이 들어왔는데, 2월 이후에는 1주일에 1~2건씩 꾸준히 서류를 접수하고 있다”며 “입법화가 진행되는 만큼 당분간 신청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올해 접수한 20건은 모두 정부가 STO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2월 이후 제출된 서류다.
에버트레져나 하이프처럼 샌드박스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 초기 창업가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조각투자 서비스는 부동산과 미술품, IP 등 특정 영역에 집중된 경향을 보였다. 올해 등장한 창업가들은 이력과 아이템이 과거와 비교해 독특해졌다. 스타트업 하이카이브는 한국동서발전, KB증권과 함께 풍력·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를 STO화한다. 이재범 하이카이브 대표는 프랑스에서 경영전문대학원(MBA)을 마치고, 두바이에서 토건·금융 분야 감사직 공무원으로 일한 이력이 있다.
미국 모기지 채권을 조각투자로 만드는 스타트업 에이락은 블록체인 전자지갑 사업을 하던 홍영기 대표가 이끈다. 홍 대표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 모기지 채권 시장은 부실률이 0.01% 수준인 것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의 크라우드 펀딩을 성공시킨 스타트업 펀더풀도 상업 영화·드라마 조각투자 진출을 타진 중이다. 시장에선 선박(HJ중공업·미래에셋증권·한국토지신탁), 유튜브 채널(하나증권·크라시아미디어) 등의 공략을 선언한 기성 자본과 미술품(테사·열매컴퍼니 등), 한우(뱅카우) 등 ‘도전자’들의 아이템이 조화를 이뤄 생태계가 팽창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해결 과제 산적…“자생적 노력 필요”
조각투자 창업가들이 주목하는 건 단연 법제화 동향이다. 지난달 28일 발의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따르면 조각투자는 비금전신탁 수익증권과 투자계약증권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부동산 조각투자, 후자는 미술품·한우 등이 대표적으로 포함된다. 분류별로 지켜야 하는 원칙은 조금씩 다르다. 비금전신탁 수익증권은 개정안 통과 이전까지 규제 샌드박스로 토큰 발행·유통(거래)이 가능하고, 투자계약증권은 이런 과정이 필요 없고 발행만 허용하는 식이다. 내년 하반기께 법제화가 마무리되면 발행과 유통이 자유로워지지만, 발행사(발행인 계좌관리기관)와 유통사는 분리해야 한다.업계의 걱정은 수수료다. 발행과 유통을 분리할 경우 일반적으로 발행사 지위는 스타트업이, 유통사는 협력 증권사가 맡게 된다. 업체로서는 발행 수수료를 취하고 거래 수수료를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장외거래 일반투자자의 투자 한도를 제한하는 내용도 유동성 공급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계약증권의 증권신고서 승인 과정이 까다로울 것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투자자 보호 장치와 사업체 신뢰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너무 높게 설정되면 영세한 규모의 스타트업이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도 서비스를 펼치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우려는 업계의 자생적 노력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발행과 유통을 한 업체가 담당하는 것은 현행 자본시장법의 대원칙을 어기는 것일 뿐만 아니라 투자 한도 제한이나 증권신고서 승인 절차는 변동성이 큰 조각투자 시장의 안착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것이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투자계약증권의 경우 신탁업자나 집합투자업자가 끼지 않아 온전히 발행인의 신용도를 따져야만 하는 상황”이라며 “유동성 문제 역시 발행사 상품이 좋으면 투자자가 몰리며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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