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회사인 피치가 1일(현지시간)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가장 큰 배경은 미국의 국가채무 급증이다. 들어올 재원이 뻔한데 나갈 돈은 급속도로 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미국의 국채 이자 부담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신용등급 하락 요인으로 꼽았다.
미국 정부는 강력 반발했지만 국가채무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면 최고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국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19 위기 대응 때 미국 정부의 씀씀이 규모는 이전과 차원이 달랐다. 2020년 3월 말 23조2000억달러(약 3경원) 수준이던 미국 국가채무는 석 달 후 26조5000억달러로 3조3000억달러(14.2%) 늘었다. 이후에도 계속 증가해 올해 1분기 미국 국가채무는 31조5000억달러를 넘어섰다. 3년 만에 미국 국가채무가 12조3000억달러(36%) 늘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025년 118%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국가신용등급이 AAA인 국가들의 중간값(39.3%)보다 2.5배 이상 높은 수치다.
문제는 미국 정부의 재정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이 작다는 것이다. 세금과 국채 발행으로 재원을 마련하는데, 세금은 줄고 금리 상승으로 국채 이자 부담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에 미국 연방정부의 세수는 1년 전보다 11% 줄었다.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미국 정부가 내년 말까지 내야 할 국채 이자가 미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3%였다. 이 비율이 1.86%였던 지난해 말에 비해 넉 달 만에 이자액만 980억달러 늘었다.
피치는 “향후 10년간 금리 상승과 부채 증가로 이자 상환액이 더 늘 것”이라고 경고했다. 피치는 미국 정부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지난해 말 3.7%에서 올해 말 6.3%로 급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내년에 6.6%, 2025년엔 6.9%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피치는 부채한도 문제를 둘러싼 미국 정치권의 대립도 신용등급 강등의 주요인으로 지목했다. 부채한도 상향 문제를 놓고 벼랑 끝 대치를 하다 막판에 해결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국가 거버넌스(지배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피치는 지적했다.
미국 의회는 올해도 마감 시한 직전인 5월 말에 부채한도 협상안에 합의했다. 2년간 부채한도 적용도 유예해 미국 국가채무는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미국 정부는 피치의 이 같은 지적에 “터무니없다”며 발끈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에 대해 “자의적이며 오래된 데이터를 토대로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미국 국채의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임시방편으로 일관하는 미국 정치권이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산운용사인 컬럼비아스레드니들의 에드워드 알 후사이니 애널리스트는 “피치는 미국의 부채한도 결정 과정과 재정에 대해 위험신호를 주려고 한 것 같다”며 “두 가지 모두 미국 정책보다는 미국 정치에 대한 의견”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장서우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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