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세 대출의 역설…집주인 신용경색 비상

입력 2023-08-06 17:47   수정 2023-08-14 17:22

정부가 지난달 시행한 ‘역전세 반환대출 규제 완화’로 인해 앞으로 1년 동안 집주인에게 심각한 신용 경색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번 조치에 따라 일시적으로 대출 한도가 늘어나지만 향후 1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신용대출 등 다른 대출은 연장 계약이 되지 않아 일시에 상환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집주인은 역전세 반환대출을 받기 전 앞으로 만기가 돌아올 다른 대출의 상환 시기와 현금 동원 여력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종전 신용대출엔 DSR 40% 적용
지난달 27일 시행된 역전세 반환대출 규제 완화는 1년간 한시적으로 역전세 위기에 놓인 집주인에게 대출 한도를 늘려주는 게 핵심이다. 이전까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기준에 따라 집주인의 최대 대출 한도가 제한됐는데, 내년 7월 말까지 1년 동안은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 대출에 한해 ‘총부채상환비율(DTI) 60%’ 규제가 적용된다.


DSR 40% 규제 대신 DTI 60% 규제를 적용받는 집주인은 이전보다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연소득이 1억원인 집주인의 주택담보대출 한도(금리 연 4.0%, 30년 만기)는 최대 7억원에서 10억5000만원으로 3억5000만원 늘어난다. 연소득이 5000만원인 집주인은 3억5000만원에서 5억2500만원으로 한도가 1억7500만원 늘어난다.

문제는 규제 완화 조치가 시행되기 이전까지 주담대뿐만 아니라 신용대출 등을 함께 받아 DSR 40%를 꽉 채워 빚을 지고 있던 집주인이다. 역전세 반환대출을 받으면 DTI 60% 한도까지 추가적인 주담대를 받을 수 있지만 기존에 받아놓은 신용대출 등 다른 대출엔 이전과 같은 DSR 40% 규제가 적용된다. 이에 역전세 반환대출을 받은 이후엔 기존 신용대출은 만기 연장 목적의 재계약도 불가능해 일시 상환해야 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용대출은 보통 만기가 1년으로 짧기 때문에 기존에 신용대출을 갖고 있는 차주는 역전세 반환대출을 받으면 세입자에게 돈을 돌려주는 것보다 오히려 더 큰 자금난을 겪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 “주택 매도도 고려해야”
정부는 역전세 반환대출 규제 완화 조치가 집주인에게 일종의 특혜를 주는 정책인 만큼 집주인이 만기가 도래하는 다른 대출은 당연히 갚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신용대출은 만기가 도래하면 당연히 상환해야 하는 대출”이라며 “역전세 반환대출을 받는 집주인이라면 추가적인 신용대출 연장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는 불편함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역전세 위험에 놓인 집주인이라면 주택을 아예 매도하는 전략도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효선 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경기가 침체 국면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하반기 주택 시장은 상반기만큼 좋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상당하다”며 “서울 주택은 전세가율이 낮은 만큼 매각을 해도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줄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에 본인의 자금 사정에 따라 주택 매도를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고 했다.

역전세 반환대출 규제 완화 조치가 가계대출 불안을 키울 것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한국은행은 지난 17일 연구보고서를 통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국내 가계부채 비율을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 DSR 규제 예외의 축소를 권고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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