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흉기 난동 범죄를 미국 버전으로 보면 총기 난사 사건에 다름 아니다. 칼이냐, 자동소총이냐가 다를 뿐, 집단적 트라우마가 심대하다는 게 같다. 분노와 증오가 자신에게 향하느냐, 타인에게 향하느냐에 따라 참혹성이 달라진다.
묻지마 괴물은 어느새 우리 사회를 교란하는 새 위협으로 자리 잡았다. 이달에만 서울 신림, 성남 분당 서현역 등 전국적으로 9건의 공격이 벌어졌다. “한국이 납치 살인 총격이 일상화한 남미형 사회가 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쏟아진다. 사형제 부활 논의에도 불이 붙었다. 복합 갈등으로 진이 빠진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스트레스가 등장한 것이다.
간헐적 사건이 동시다발이라는 전대미문으로 나아갔지만, 정부의 대응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난데없는 전술 장갑차와 특공대를 배치한 것부터가 그렇다. 사격과 격투에 능한 일선 경찰을 촘촘히 배치하면 될 일을 요란한 이벤트로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심하는 이들이 더 많을까, 아니면 기관총으로 칼부림에 대응할 때의 부작용을 상상하는 이들이 더 많을까. 경찰은 지난해 묻지마 범죄를 ‘이상동기’ 범죄로 명칭을 바꾸면서 의지를 보이긴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건의 정확한 통계도 없다. 대책 마련은 요란하지만, 결국엔 다시 터지는 공식을 되풀이할 것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큰 배경이다.
인간 범주 너머의 존재를 완전히 격리해야 한다는 사회적 컨센서스가 갈수록 커지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범죄 사실에 다툼이 없는 이들의 생명 연장을 위해 세금을 쏟아붓는 게 사회 정의와 무슨 상관이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일본은 2008년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7명을 닥치는 대로 찔러 살해한 묻지마 살인범 가토 도모히로의 사형을 지난해 7월 집행했다.
반사회적 소시오패스는 대개 드러난다. 더 큰 위험은 잠복 괴물들이다. 비난과 혐오, 저주의 글을 익명성이란 방패 뒤에 숨어 칼로, 총으로 쓰는 이들이다. 발달한 SNS가 괴물들의 서식지이자 요새다. 이들의 공격에 목숨을 끊은 사건은 어림셈도 버겁다. 칼부림만이 잔혹한 테러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낯선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가해자의 연령도, 성별의 경계도 사라지는 추세다. 칼부림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모방형 살인예고 글을 올려 검거된 이들이 54명에 달했다. 이 중 상당수가 SNS에 능한 미성년자라는 게 의미심장하다. 사회적 흉기에는 면책이 있을 수 없다.
우리 치안 조직은 임계점으로 치닫는 위험 레벨의 변화를 앞서가지 못하고 있다. 되레 흉포한 범죄자에게 존댓말을 쓰는 등 ‘인권적으로’ 살폈다가 유족들로부터 뭇매를 맞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 등 이런저런 인권 지침에 막혀 마음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이상동기 범죄 분석 조직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한 범죄심리 전문가는 “잠재적 위험군을 포착하는 예방적 활동을 위해선 인권과 사회적 이익을 조정하는 특별한 사회적 타협이 필요하다”고 했다.
누구나 잠재적 피해자가 된다. 이걸 막는 게 정부의 예측력이다. 경고등은 켜졌다. 남은 것은 결단과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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