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과학자’를 양성하겠다고 의대를 신설하면 의사만 늘어납니다. 헬스케어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와 신사업을 할 수 있는 헬스케어 엔지니어를 키워야 합니다.”
홍유석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은 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의사과학자 육성을 위해 의대를 신설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은 매우 비효율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의대를 세우고 면허를 주면 의사만 늘어난다”며 “의사과학자는 10명도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학장은 지난해 취임한 이후 서울대 공대에 기존 사고의 틀을 깨는 ‘융합’을 이식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산업공학과 출신 첫 학장인 그는 서울대에 처음으로 기업과 협약을 맺은 계약학과를 도입했다. 올해부터는 공대생을 학과별로 뽑는 대신 광역으로 선발하는 융합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산업 현장과 대학, 연구소가 3각 축을 이뤄 함께 가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민간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그의 확고한 신념이다. 의사과학자 확보를 위한 의대 신설에 부정적인 것도 헬스케어 데이터와의 융합이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는 “문제풀이 훈련을 한 학생들을 줄 세우는 지금의 대학수학능력시험 방식으로는 융합형 인재를 키울 수 없다”며 전면적인 개편을 주장했다.
▷의사과학자 양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의사과학자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의사를 전제로 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의사인 과학자를 만드는 방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의사과학자 육성을 위해 의대를 신설하면 지금과 같은 의사만 양산됩니다. 의사과학자는 10명도 나오기 힘들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이 돼야 할까요.
“헬스케어 엔지니어를 육성해야 합니다. 전통적인 의료는 의사의 지식과 경험에 의존하지만, 앞으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환자를 진단할 수 있어야 하죠. 병원의 헬스케어 데이터를 활용해 공대에서 솔루션을 만드는 헬스케어 엔지니어가 필요합니다. 서울대는 이미 17년 전부터 의대와 공대의 공동 연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권성훈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대표로 있는 퀀타매트릭스(미생물 진단 기술 기반 체외진단 전문 기업)가 대표적인 협력 성과입니다. 첨단융합학부에 있는 디지털헬스케어 전공도 헬스케어 엔지니어를 키우기 위한 과정입니다. 앞으로 헬스케어 엔지니어링 대학원 과정, 헬스케어 엔지니어링 연구소까지 세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이 심각합니다.
“수능을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합니다. 현재 수능은 문제풀이 훈련을 한 학생들이 잘 보는 시험입니다. 교과 과정에서 문제를 내도 학원에서 문제풀이 훈련을 받은 학생들에게 유리합니다. 수능을 자격고사화하고,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하든 새로운 형태의 수능을 개발하든 미래지향적인 방식으로 바꿀 때가 왔습니다.”
▷의대 선발 방식도 여전히 수능 중심입니다.
“의대 입시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상위권 학생들이 반수, 재수를 하는 것은 수능 점수로 줄을 세워서 뽑기 때문입니다. 의대는 사명감이 있고, 의사를 잘할 수 있는 학생을 뽑아야 합니다. 각 학교 의대에서 제대로 된 의사가 될 사람을 뽑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7~8년 전부터 논술, 구술이 아니라 다면평가로 의대생을 선발하는 서울대 의대의 방식도 의미가 있습니다.”
▷올해부터 학과 구분 없이 공대 광역으로 신입생을 뽑았습니다.
“성공적이라고 자평합니다. 올해 초 신입생이 들어왔고, 2학기에 학과를 선택하게 됩니다. 원하는 과를 선택하면 무조건 그 과에 보내줄 겁니다. 상황에 따라 인기 학과 쏠림이 있겠지만 그게 광역 모집의 목적입니다. 사회의 변화하는 수요에 대응하는 거죠. 현재는 공대 정원의 5.5% 정도만 광역 모집으로 뽑지만 추이를 보고 확대할 수 있을 겁니다.”
▷공대 교수 평가 방식에 변화도 추진하나요.
“교수에 대한 평가를 양적 평가에서 질적 평가로 바꾸고 싶습니다. 그간 한국은 글로벌 연구 분야에서 후발 주자이다 보니 논문 수를 늘리는 데 집중해왔습니다.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양질의 논문을 낼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승진 등 인사제도, 연구비 지원 등에서 질적 연구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방향으로 학교 시스템을 개선할 계획입니다. 궁극적으로 논문 한 편으로도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정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산업공학과 출신 첫 학장으로 대기업 근무 경험도 있는데, 학장 업무에 어떤 도움이 됩니까.
“산업공학이 원래 융합 학문입니다. 학장의 위치에서 다뤄야 하는 업무 중 상당수는 전공에서 배운 철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개별 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런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연결하고, 산업계에까지 확장할지 등은 학부생 때부터 늘 생각하던 것이니까요. 자동차 연구소에서 6년간 일한 경험은 기술이 산업에 어떻게 활용되는지, 어려움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서울대 공대의 첫 계약학과도 만들었습니다.
“기계공학부, 전기정보공학부 등의 대학원에 기업과 협약을 통해 계약학과를 도입했습니다. 학부에 계약학과를 만드는 데는 반대가 많습니다. 계약학과는 5년에서 길어야 10년 정도로 한시적입니다.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학부를 다니는 것이 학생 입장에서 바람직할까요. 또 계약학과는 전속 교수가 별로 없습니다. 학부생 교육에 한계가 있는 거죠. 다만 대학원 수준에서는 필요하고 앞으로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인력 교류를 통한 산학연 협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학교에 과제를 주고, 보고서를 받는 방식으로는 산업계와 학계가 충분히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교수가 회사에 가서 연구하고 일하며 월급을 받기도 하고, 반대로 회사 임원이 연구를 위해 학교에 오기도 하는 등 직접적인 인적 교류가 필요합니다. 학생, 교수, 임원, 연구원, 직원 등 모든 레벨에서 교육과 연구가 함께 가야 합니다. 서울대는 화학생물학과에 한화, LG에너지솔루션 등과 분야별로 산학협력센터를 만드는 등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젊은 인재들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걱정이 큽니다.
“지금 꼭 필요하고 관심이 많은 분야일수록 한국으로 오려는 젊은 인재가 적습니다. 서울대에서 교수로 원할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면 현지에서도 충분히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수로는 경쟁력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운신의 폭을 생각하면 서울대 교수로 일하는 것에서 충분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서울대 교수가 되면 한국에서 전공 분야의 미래 방향성을 결정할 수 있고, 관련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력도 큰 편입니다. 단순히 돈으로 환산하지 말고 학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려하면 한국행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 홍유석 서울대 공대 학장 프로필
△196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산업공학 학사, 석사
△미국 퍼듀대 산업공학 박사
△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미국 털리도대 기계산업제조공학과 조교수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서울대 공대 학장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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