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산업 전방위적으로 ‘우수 디지털 인재 확보를 위한 경쟁(Talent War)’이 치열했다. 코로나19 이후 생겨난 언택트 경영환경 변화에 맞춰 기업의 디지털 혁신이 가속화된 탓이다. ICT 업계 뿐 아니라 제조업, 유통업, 금융업 등 다양한 산업에서 디지털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파격적인 보상을 내거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디지털 혁신 시대에는 우수 인재 확보가 기업의 핵심 과제임은 분명하다. 다만, 인재 확보 자체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계속해서 다니기 좋은 회사를 만드는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 영입이 어려운 만큼, 이탈이 야기하는 리스크는 크다.
우수인재 이탈은 신규 채용에 따른 비용, 트레이닝 비용, 기존 인력 간 업무 재분배, 사기 저하와 같은 감정 비용 등 조직 내 다양한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 2022년 MERCER의 'Global Talent Trend'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인력의 퇴사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 비용이 인당 연봉 대비 약 1.5에서 2배에 이른다. 우수 디지털 인재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인프라)을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디지털 인재에 적합한 업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이들의 고유 특성을 이해하는게 중요하다. 핵심적인 특징은 1)연공이 아닌 전문성 중심 2)프로젝트 기반 업무 수행 3)전문성·역량 향상 중시로 요약해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특정 과제나 프로젝트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며 일을 하는 특성이 있다. 이때 경력이나 연공보다는 보유한 전문성, 기술 등에 따라서 팀 구성과 역할 배분이 이루어진다. 프로젝트 안에서는 리더와 실무자와 같은 심플한 역할 단계로 위계가 적고, 결국 조직 안에서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이 핵심이다. 각자의 전문성과 역량이 중요하다 보니, 디지털 인재들은 직무역량·전문성 향상에 대한 니즈가 상대적으로 강한 경향이 있다. 돈도 중요하지만, 어떤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더욱 중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디지털 인재에게 적합하고, 이들이 지속적으로 머물 수 있는 업무 환경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의 세가지 방안을 제시해본다.
(1)전문성 중심 인력/조직운영
가장 먼저, 직무 전문성을 기준으로 하는 인력·조직운영의 도입이다. 이를 위해서는 디지털 인재 개개인의 보유 전문성 수준을 정의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IT 직무전문성의 판단을 위해 일반적으로 수행 업무의 영향력, 복잡성, 요구 지식 수준, 커뮤니케이션 난이도 등을 기준요소로 삼는다. 그리고 각 기준요소 별 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을 정한다. 이때 전문지식 테스트, 외부 전문가 평가, 상사 또는 동료의 평가 등을 활용할 수 있다. 한 대기업 ICT 계열회사는 기술인증 시험을 실시하여, 이를 기준으로 개인의 역량레벨을 결정한다. 다른 국내 플랫폼 기업은 성과 영향력, 문제해결력 수준, 전문성에 대해 상사·동료의견을 종합 반영하여 개인별 전문성 레벨 수준을 심사하고 있다.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ICT 기업들은 물론이고, 국내 주요 그룹사의 ICT 계열사, 심지어 전통적 체계를 고수하던 금융사들까지 디지털 인력 대상으로 전문성 관리체계를 운영하거나 도입 검토 중이다.
IT 기능은 연공보다는 전문성 수준과 성과 창출 간 상관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별 전문성 수준(레벨)을 평가·보상·승진 등에 직접적 기준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직무 전문성 레벨과 연계한 승진 심사나 수당·보너스 차등 등이 대표적인 운영 모습이다. 이러한 제도가 도입·운영되면 구성원들은 전문성 수준이 중요하고, 이를 중심으로 인사 운영이 이루어짐을 체감하게 된다. 또한 내가 가진 능력과 실력에 따라 나의 처우와 보상, 그리고 수행 업무가 결정된다는 면에서 인사 운영의 공정성, 수용성도 높아질 수 있다.
(2)일하는 방식과 연계한 성과관리 및 보상
다음으로, 프로젝트 중심 업무 특성을 고려한 차별적 평가·보상제도를 구축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업무 환경으로, 연초 설정한 목표가 연말 평가시기까지 유효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는 비단 디지털 인력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특히 수시로 생기고 없어지는 프로젝트성 업무가 많은 디지털 구성원들에게는 이러한 업무 특성을 고려한 성과관리가 필요하다. 참여한 프로젝트의 성과가 어땠는지, 그 과정에서 동료와 어떠한 협업 성과를 냈는지, 본인이 맡은 영역에 있어 어느 정도 기여를 했는지, 충분한 전문성과 역량을 발현했는지 등과 같이 프로젝트 성과와 연계된 관리 포인트를 잡는 방식이다. 또한 연 단위의 짜여진 평가가 아니라, 프로젝트마다의 주요 마일스톤을 고려하여 보다 수시로, 자주 리뷰하는 형태가 적합하다. 여기에 더해 프로젝트 성과와 연계한 보상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나의 업무 특성에 맞는 성과관리가 이루어지고, 이에 기반한 보상까지 이어져야 구성원들이 이를 체감하고 보다 능동적으로 성과를 내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구글은 프로젝트에서 함께 협업한 동료들의 인정을 받은 구성원에게 동료 보너스를 지급하기도 하고, 성공적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매우 우수한 성과를 낸 구성원에게는 별도의 특별 보너스를 지급하기도 한다. 한 국내 대기업은 우수 테크(Tech) 인력들의 프로젝트 성과 장려를 위해 별도의 프로젝트 인센티브와 혁신 과제 인센티브를 통해 이들이 프로젝트 자체의 성과에 집중하도록 한다. 이처럼 디지털 인재들의 일하는 방식에 맞게 성과관리와 연계 보상을 할 때 디지털 인재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회사에 필요한 성과를 내도록 움직일 수 있다.
(3)자기 주도적 육성(성장) 지원
끝으로, 디지털 인력들이 업무를 통한 경험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IT 영역은 전문 분야에 대한 많은 경험 축적과 지속적인 전문성·역량 강화가 특히 중요하다. 그리고 스스로도 전문성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새로운 기술 트렌드에도 따라가고자 하는 니즈가 강한 특성이 있다. 본인이 보유한 전문성 수준이 높고 그 영역이 넓을수록, 조직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시장에서 널리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개인의 성장 니즈를 채워주는 제도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이는 우수한 디지털 인재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회사에 필요한 전문성과 조직역량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다만, 육성(성장)을 지원하는 방식에 있어 회사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보다는 예산 ‘지원’ 중심 역할로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회사가 정한 예산 범위 내에서 국내외 전문 컨퍼런스 참석 지원, 전문기관 교육 비용 지원 등 외부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식이다. 일반적으로 내부 교육·육성 담당 부서에서는 디지털 전문인력들이 필요로 하는 전문 콘텐츠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필요 콘텐츠는 직원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고를 수 있게 하되, 예산을 한정하고, 원칙과 절차를 관리하는 방식이 보다 적합하다. 동일한 예산을 쓴다면 그들이 원하는 교육과 성장의 방식을 스스로 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국내 대표적인 플랫폼 기업들은 대체로 이러한 방식의 성장 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IT 인력의 업무 만족도를 높이고, 계속해서 일하고 싶은 회사의 모습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다.
디지털 인재 확보를 위한 몸값 싸움이 연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런 ‘치킨게임’이 다소 잠잠해진 요즘, 인재 확보를 위한 일시적 유인책 뿐만 아니라, 이들이 계속해서 다니고 싶은 회사를 만드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이해와 이를 바탕으로 한 HR 인프라·제도 구축이 선행되어야 하겠다.
디지털 인재들이 능동적으로 전문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회사는 필요한 인재와 계속해서 함께 할 수 있고, 직원은 높은 몰입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윈윈(Win-Win) 관계를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김민재 머서코리아 수석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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