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복순은 근로자일까, 프리랜서일까

입력 2023-08-08 15:35  



길복순은 MK엔터테인먼트 소속 살인청부업자다. MK엔터테인먼트는 이벤트 회사를 가장한 살인청부회사로, 1)미성년자는 죽이지 않을 것 2)회사가 허가한 작품만 할 것 3)회사가 허가한 작품은 반드시 트라이 할 것이라는 3가지 규칙을 만들고 이를 어기는 자를 제거함으로써 회사 소속이 아닌 사람들은 일을 맡지 못하도록 하여 프리랜서 살인청부업자는 사라졌다. 그러면 근로자 살인청부업자만 남은 것인가. 물론 근로자냐 프리랜서냐 구분에 앞서 살인청부와 같은 반사회적인 행위가 계약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는 논외로 한다.

프리랜서는 보통 자신의 기술과 능력,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사업을 하는 개인사업자를 의미하는 반면, 근로자은 직업의 종류와 무관하게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개념적으로는 개인사업자와 근로자가 명확히 구분되나 실제로는 애매한 경우가 많고 그만큼 분쟁도 많다. 보험업계 종사자, 학원 강사 등 학원업계 종사자, 지입차주 등 물류업계 종사자, 방송·연예계 종사자 등이 대표적인 직종이다.

분쟁의 유형은 (1)계약관계 종료 후 퇴직금을 청구하는 분쟁 (2)계약관계 종료가 부당해고라고 다투는 분쟁 (3)계약기간 중 근로자 지위의 확인을 구하는 분쟁이 대표적이다(민사분쟁만 본다). 그 중에서도 퇴직금을 청구하는 분쟁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러한 분쟁에 대하여 계약기간 중에는 엄격한 근태관리를 받지 않고 사업자로서 세금 혜택도 받는 등 이익을 누렸으면서도 계약이 끝나자 ‘과거에 근로자였다’라고 주장하면서 퇴직금을 달라고 하는 것은 법률관계의 취사선택으로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신의칙에 반한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이러한 분쟁을 제기하는 이들은 유사한 업종에서 사업자로 일을 하고 있고, 현재 일하는 곳에서 근로자가 되겠다는 주장은 하지 않으면서 과거 일했던 곳에서 퇴직금만 받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고, 판결 결과 어떤 직종이 근로자로 인정되었더라도 실제 근로계약이 체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퇴직금만 쌓아 두는 방식으로 후속 절차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위와 같은 지적에 일리가 있다. 이러한 실상이 고려된 판결을 찾기 어려운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어쨌든 현재 판례에 따르면, 근로자는 ‘사용종속관계’에 있어야 하고, 이를 판단하는 징표로는 사용자의 상당한 지휘·감독, 사용자의 근무시간, 장소 지정, 노무제공자가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가능성, 노무 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 보수의 성격 등이다(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

길복순은 MK로부터 의뢰를 받으면 시간, 장소, 방법에 구애를 받지 않고, 청부받은 일을 진행한다. 일의 성격상 회사에서도 의뢰만 할뿐 구체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기는 어렵다. 상당한 지휘·감독, 근무시간 및 장소의 지정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한편, MK 소속이라면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제거되는 점에서 구속력이 있다. 또 MK는 소속 살인청부업자를 평가한 후 A, B, C 등급으로 나누어 그에 따라 일감과 보상을 구분한다. 간혹 MK가 하는 정도의 조치들이 사용종속관계의 징표가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을 본다. “구속력이 있는 규칙이 있고 지키지 않으면 해고되는 것이니 취업규칙이 있는 것이다 다름없다”, “등급은 평가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근로관계에서 인사평가와 다름없다”는 주장들이다.

그러나 상호 간에 지켜야 하는 일정한 룰이 있거나 누가 누구를 평가하면 사업자 대 사업자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인가? MK는 길복순에게 일감을 주고, MK는 맡은 일을 완수함으로써 수익이 생긴다. 그리고 MK의 룰을 따름으로써 시장에서 MK의 지위는 더욱 공고해지고 길복순은 더욱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서로 윈윈(win-win) 관계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어느 한쪽이 이기적으로 변모하여 윈윈관계가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서로 지켜야 할 룰은 정할 수 있다. 길복순의 입장에서도 MK라는 브랜드를 이용하여 일을 하는 이상 MK의 룰을 따르는 것은 기본적인 의무일 것이다. 비용을 지급하는 측에서 업무 성과를 평가하여 보상을 달리하는 것 역시 일반적인 계약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사용종속관계의 전형적인 징표는 아니다. 등급에 불만을 가진 동료에게 길복순은 “실력 따라 대우 다른 건 사회생활 기본이야”라고 일축해버린다.

또 길복순은 일본 야쿠자를 처리하고 난 후 술자리에서, 지인이 “이 정도 거물급이면 페이는 얼마나 하는거야?”라고 묻자, “술값 살 정도는 된다”고 답한다. 길복순의 보수는 노무제공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일의 대상과 성격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 길복순이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나, 맡은 일의 결과에 따라 큰 이윤을 얻거나 노동력의 상실이라는 손해를 입을 위험을 감수하였다.

계약관계의 본질이나 계약이행 과정에서의 여러 모습들을 보면 길복순이 근로자가 되기는 어렵다. 같은 술자리에서 또 다른 지인은 “우리 회사는 규칙 지키다 망해서 퇴직금도 안 나온다니까”라고 푸념한다. 원래 못받는 것인데, 법률관계에 대한 오해가 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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