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왜 여기 누워계세요? [더 라이프이스트-성문 밖 첫 동네, 중림동 이야기]

입력 2023-08-08 17:29   수정 2023-08-16 09:18



초등학교 시절, 잠 자던 내 머리맡에서 부모님이 뭔가 심각한 대화를 하고 계셨다. 아버지의 "목이 잘릴 것 같다"는 섬뜩한 이야기에 잠이 확 깼다. 아버지는 초등학교에서 물품 관리와 행정 보조 업무를 담당하고 계셨는데, 그 즈음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일을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해고 된다는 것을 목이 잘린다고 표현한 것이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의 생목이 잘리는 상상을 하며 눈도 뜨지 못하고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직장인들이 자주 쓰는 표현을 조사하면 ‘목이 잘린다’는 말이 수위(首位)에 들 것이다. 직장생활을 삶의 전부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의건 타의건 직장을 떠나야 하는 현실은 진짜 목이 날아가는 것과 같은 고통의 의미로 다가올 수 있겠다.

성문 밖 이곳, 서소문 역사공원은 실제로 수많은 사람의 생목이 잘려 나간 곳이다. 무악재에서 발원해 내려온 만초천은 이곳에서 아현과 약현의 높은 지형을 넘지 못하고 선회하여 염천교 방향으로 흘러갔다. 물이 흐르던 이곳, 평평한 지역은 넓은 모래밭이 형성돼 있었다. 모래밭은 끔찍하게도 사람을 참수(斬首)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정확한 위치는 만초천의 여섯 개 다리 중 하나인 서소문역사공원내의 ‘이교(泥橋, 진흙다리-서소문역사공원에 이교의 위치가 표시돼 있다) 건너 만초천변 모래사장’이다.

당시 천주교를 믿었다 하여 바로 참수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형조, SC제일은행 자리에 있던 의금부, 동아일보 앞의 우포도청 등에서 고초를 겪다가 끝까지 배교하지 않으면 이곳으로 끌려온다. 참수가 확정된 사람은 마차에 실려 오는데, 사형수를 발판 위의 십자형 틀에 매달고 내려오다 서소문 밖의 급한 내리막을 내려올 때 발판을 빼내 도착할 때는 거의 기절 상태로 온다는 것이다. 형장에 도착한 사형수의 귀는 화살로 꿰뚫고, 얼굴은 회를 발라 하얗게 만든다. 귀에 꿴 화살을 잡아당겨 목을 자르기 쉽게 평평하게 만들고 형을 집행한다. 사형 장면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려오는데, 칠패시장으로 장 보러 온 사람, 성문 밖 마실꾼들, 숭례문을 통해 귀성하려는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모인다. 많은 사람에게 교훈을 주려는 일벌백계(一罰百戒)에는 최고의 장소였다. 단번에 목이 잘려 나가 죄수의 고통이 감해지기를 바라는 사형자의 가족들은 막걸리로 불콰해진 망나니에게 뒷돈을 찔러주었다. 망나니의 칼춤, 생과 사의 절묘한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바라보는 시선들, 이 모든 광경이 큰 구경거리인 셈이다. 모래밭에 나뒹구는 머리, 칼에 엉겨 붙은 사람의 기름과 피는 흐르는 냇물에서 씻으면 그만이었다. 앞 칼럼에서 언급한 ‘뚜께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로 참형에 쓰인 칼자루를 닦았다.

이곳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이 몇이던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곳에서 죽은 순교자들을 복자와 성인으로 추존했다. 지금의 현양탑은 1999년에 세워졌다. 가운데 주탑과 좌우 대칭으로 두 개의 탑이 더 있다. 조선시대 죄인에게 씌웠던 큰 칼의 모양이다. 가운데 탑에는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의 형상이, 오른쪽에는 27위 복자와 30위 순교자의 이름이, 왼쪽에는 순교한 성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 때의 순교자 44위이다. 현양탑을 올려다보니 낯익은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정약용의 일가들이다. 이승훈은 정약용의 큰 매형이요, 정약종은 그의 셋째 형이며 신유박해에 순교했다, 정약종의 아들 정하성은 기해박해에 순교했다. 교과서에서 배운 그 유명한 <황사영백서사건>의 황사영의 이름도 보인다. 정약용의 조카사위다. 한 집안이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무참히도 죽었다. 우리나라의 천주교는 이렇게 피로써 보존되었다. 정작 정약용은 이 죽음의 행렬을 피해 귀양살이를 떠났다. 그의 배교는 진심이었을까?


조선시대 300년을 참수장으로 쓰였던 이곳에선 일제강점기에 또 다른 종류의 살생이 횡행했다. 형장이었던 이곳의 넓은 모래밭에 일본인들을 위한 활어시장이 개설됐다. 경성역이 바로 앞에 있어서 각지에서 올라오는 수산물이 모이기 용이했다. 남산 아랫마을 남촌에서 숭례문까지 형성된 일본 거류민촌에 생선을 공급하기에도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1927년 경성부수산시장을 개설했고, 1937년에는 경성중앙도매시장으로 확대됐다. 싱싱한 선어를 경매로 소매상들에게 공급하는 경성 최대의 도매시장이었다. 수많은 동태 대가리가 어시장 상인 손에 의하여 잘려 나갔다. 해방 이후에도 이곳에 도매시장이 남아 어류는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채소류는 용산 청과시장으로 분화됐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수많은 사람과 물고기의 머리가 잘려 나간 터가 센 곳이다.

지금의 모습은 어떨까? 비 오는 날 우산을 받쳐 들고 공원에 들어섰다. 1997년 IMF 이후에는 삶의 현장, 직장에서 타의 반 자의 반 쫓겨난 길거리의 천사들이 공원의 벤치에 몸을 의탁했던 곳이다. 무료 급식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넘쳐나던 곳, 인근 허름한 목욕탕은 이들을 구호하기 위한 구세군 자선센터로 바뀐 지 오래다. 비는 내리는데 누군가가 벤치에 누워있다. 가까이 가서 깨워 볼까 하는데 인기척에 미동도 하지 않는다. 누구인가? 예수님이 아닌가? ‘노숙자가 된 예수님’(Jesus the Homeless)의 조형물이다. 이 예수상은 어느 성당 앞에 설치돼 신성모독의 논란까지 일으킨 캐나다 작가 티머시 슈말츠(Timothy Schmalz)의 작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인근에서 얼어 죽은 노숙인을 기리기 위해, 그의 작품을 직접 축복하고 교황청에 설치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여러 나라에 설치됐고 서소문 역사 공원에도 있다.



예수님이 지금 다시 이 땅에 오신다면 이곳에 이런 모습으로 누워계실까? 신앙의 절개를 지키고자 자신의 목을 내놓은 사람들이 200여 년 전 신유박해로 이곳에서 죽었는데… 그후 200여 년 후에는 노숙자 예수님이 벤치를 지키고 있다. 예수님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를 지키실까? 삶의 무게에 지친 영혼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계실까? 이 고단한 삶의 벤치에서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며 몸을 내려 쉬고 계실까? 돌아오는 길에 신문사 옛 동료들을 마주쳤다. 직장 동료들과 술 한잔하고 택시를 기다리는 중이란다. 옛 동료들의 모습이 벤치에 누워있는 고단한 예수님과 오버랩된다. 당신이 가정과 사회를 지키는 예수님이요. 어두운 밤에 비는 내리는데…

<한경닷컴 The Lifeist> 한이수 엔에프컨소시엄에이엠 대표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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