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케이(일본경제신문)가 8일(현지시간) "일본 소프트뱅크 산하 영국 반도체 설계 기업 ARM이 오는 9월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다"며 "미국 애플과 한국 삼성전자 등 여러 기업이 ARM에 투자한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가 ARM의 일부 지분을 소프트뱅크로부터 매수할 것이란 얘기다.
보도대로 삼성전자는 ARM 지분 인수에 관심이 있을까. 삼성전자 내부에선 'ARM 일부 지분 인수' 보도에 대해 '소프트뱅크의 희망 사항일 뿐'이란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선 삼성전자가 ARM 지분 인수에 관심을 가질만한 이유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IPO 과정에서 유명 투자자들이 지분을 인수하는 것은 '흥행'의 필수 요건으로 꼽힌다. 닛케이 보도대로 ARM 지분을 애플, 인텔, 삼성전자 등이 매수한다면 ARM의 기업가치도 커지게 된다. 반도체업계에선 "닛케이가 '흥행'을 원하는 소프트뱅크의 희망 사항을 담아 기사를 쓴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는 현재 시점에서 왜 ARM에 관심이 없을까.
손 회장은 ARM을 320억달러(38조원)에 인수했다. 엔비디아 인수 때 기업 가치는 400억달러(52조8000억원)로 치솟았고 닛케이는 ARM이 600억달러(약 79조원) 이상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단순 계산해서 삼성전자가 지분 2%를 산다면 1조5800억원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매력적이지 않다." ARM 지분인수에 대한 반도체업계 관계자의 평가다. 지분을 산다고 해서 IP 수수료를 깎아주는 것도 아니고, 지분을 안 산다고 비싸게 받는 것도 아닐 텐데, 굳이 수천억 원에서 조(兆) 단위 자금을 넣어야 하냐는 얘기다.
ARM의 경쟁사들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매력도를 낮추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리스크파이브(RISC-V) 기술이 대표적이다. 리스크파이브는 ARM과 달리 IP를 무료로 공개한다. 인텔, 퀄컴, 삼성전자 등이 리스크파이브를 활용하는 반도체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텐스토렌트가 대표적이다. RISC-V 기반의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는 이 회사는 인텔, AMD, 애플, 테슬라 등에서 일하며 '칩 설계의 전설'로 불렸던 짐 켈러가 운영하고 있다.
2022년 10월 손정의 회장은 "비즈니스 하러 왔다"며 한국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났다. ARM의 지분 매각을 위한 '세일즈'가 가장 큰 목적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 회장과 손 회장의 친분은 상당히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0개월 전 만남 이후에도 ARM 인수 관련 삼성전자의 입장은 변한 게 없다.
삼성전자는 서두를 이유가 없다. 삼성전자의 소극적인 반응은 이런 상황에 근거한다. 급한 건 손정의 회장이다. 손 회장이 ARM 상장 흥행을 위해 삼성전자에 '거부 못 할' 조건을 제시한다면 삼성전자도 '지분 인수 참여'에 적극적인 자세로 바뀔 수 있다. 철저히 이익을 따져 움직이는 게 비즈니스의 세계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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