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수용국인 미국이 이 정도로 나올 때는 인재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이민을 필요로 하는 국가가 사람을 가려 뽑는 시대가 아니라 이민 희망자로부터 선택받는 시대로 가고 있다. 이민 유치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낮은 임금 국가는 이민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어느 순간 이민 희망자를 더는 구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면 그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인재난은 세계적 현상이다. 자국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인재 양성을 기다려 줄 인내심을 가진 기업은 없다. 기업 간 인재를 뺏고 빼앗기는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국가 간 인재를 둘러싼 전쟁 유혹도 더욱 커진다. 2064년 세계 인구가 97억 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란 미국 워싱턴대 전망이 현실이 되면 더욱 그럴 것이다. 세계 주요국이 첨단산업 인재 확보에 혈안이 된 상황에서 ‘겉은 영토 빼앗기, 속은 인재 빼앗기’ 전쟁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역사는 인구 문제가 어떤 결과를 몰고 오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의 역사인구학자이자 가족인류학자인 에마뉘엘 토드는 1976년 옛 소련 붕괴를 예견했다. 짧으면 10년, 길면 30년 내 무너진다고. 토드는 옛 소련 영유아 사망률이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치솟은 이후 수치가 공표되지 않고 있는 점을 수상히 여겨 육안으론 안 보이는 역사적 사건을 미리 내다본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전쟁 전에 인구 유출이 우려되는 파탄국가였다는 주장도, 옛 소련 주민의 복귀를 원하는 러시아가 ‘인구 절약’ 방식으로 전쟁을 하고 있다는 해석도 눈길을 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인구 확대에 집착하고 있고, 크림반도 병합으로 러시아 인구가 260만 명 증가했다는 게 니혼게이자이신문 분석이다. 영토 확장 야심의 원점에 인구가 있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중국의 인구 감소세 전환이 남의 일이 아니다. 첨단산업 인재 전략에 올인하는 중국이 미국의 봉쇄에 그냥 당할 리 없다. 인구 축소로 가는 강대국의 강한 공격성을 주장한 할 브랜즈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중국이 어떤 형태로든 반도체 강국 대만을 그냥 놔두지 않을 공산이 크다.
문제는 한국이다. 인재 때문에 전쟁을 불사할 게 아니라면 하루라도 빨리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도 세월만 허비하고 있다. 합계특수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이 초저출산 함정의 분수령 1.5를 한참 지나 지난해 세계 최저 수준 0.78까지 내려갔다. 여전히 대책만 요란할 뿐 틀을 깰 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에 맞서 경제 규모를 유지하려면 인공지능(AI)발(發) 생산성 혁명의 물결에 먼저 올라타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산업화 시대 규제가 기득권으로 남아 발목을 잡고 있지만 정부는 무능하기 짝이 없다. 투자를 하고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는 진짜 ‘AI 생산성 패러독스’ 사례가 될 판이다. 그렇다고 이민으로 눈을 돌릴 비전도 안 보인다. 1945년 프랑스가 내건 이민 원칙은 대량 수용과 국가 간 협정, 이민의 정주와 현지 융화, 가족 불러들이기 인정과 경제적 지원이었다. 이민 희망자로부터 선택을 받아야 할 시대로 가는데 한국은 아직도 골라 뽑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애들을 해외로 보내면서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한국이 ‘인구학적 자살국’으로 가고 있다고 우려하는 인구학자가 사석에서 토로한 고백이다. 저출산 미래 세대가 고령화 세대를 떠받쳐야 할 부담이 너무 심각하다는 계산에서다. 미래 세대가 한국을 등질 것이란 경고다. 사회는 과거, 현재뿐 아니라 미래와의 계약이다. 모든 이슈를 좌·우, 보수·진보의 문제로 치환해 정쟁을 벌이는 한국이 무슨 혹독한 역사적 대가를 치르려고 이러는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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