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공포영화를 봐도 다소 심드렁해진다. 별로 무섭지 않기 때문인데, 노화에 따른 무감각이 주원인이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제작자들 때문이다. 영화가 너무 무서우면 관객 수가 떨어지고 매출이 줄어들기 때문에 감독에게 수위를 조절할 것을 요구해서 공포영화가 지나치게 연성화됐다. 그래서 대체로 무섭다가 말거나, 무서운데 오히려 웃기거나, 아니면 하도 무섭지 않아서 기가 차거나 등등 그중 하나가 된다. 대신 요즘의 공포영화는 꽤나 잔혹한 척하려고 애쓴다. 칼로 쑤시고, 베고, 자른다. 얼굴엔 아이스하키 마스크를 하거나 이상한 걸 뒤집어쓰는데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런 캐릭터들은 대개가 전기톱을 든다. 이들이 왜 사람들의 몸을 가르고 피를 솟구치게 하는지, 그 살인 동기는 불분명하다. 그래서인지 그다지 안 무섭다. 죽음도, 공포도 이유가 있어야 무서움이 느껴지는 법이다.
요 몇 년 사이에 내가 정말 무섭다고 생각하며 본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다. 넷플릭스에서 2019년에 올라온(벌써 4년이 지났다. 세월이 흐르는 게 무섭다. 아 무섭다. 이런 게 진짜 공포다.) 10부작 드라마 ‘힐 하우스의 유령’이다. 나는 이 10부작 드라마를 집에서 혼자 보지 못했다. 너무 섬뜩하고 무서워서. 그래서 주로 일을 하러 다닐 때 지하철에서 봤다. 사람들 틈에서 보면 덜 무서울 것 같아서였다.
‘힐 하우스의 유령’은 두 가지의 중첩된 공포가 있다. 하나가 ‘하우스’, 곧 공간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유령’인데 그게 하필 엄마의 유령이다. 사람들은 흔히들 유령을 무서워하는 것 같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사람들이 정작 무서워하는 것은 공간이다. 예컨대 텅 빈 학교 복도 같은 곳, 아그리파가 있는 텅 빈 미술실(‘여고괴담’ 시리즈),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는 어두운 계단 같은 곳, 혹은 사람들이 사라진 마을 폐가가 이어진 골목길 등이다. 예컨대 나홍진의 ‘곡성’에서 이상한 여자 무명(천우희)은 어두운 골목길을 헤매는 종구(곽도원) 앞에 불쑥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어디 가 시방? 저짝으로는 가지 말어. 잘못허다가는 죽어.” 그때 멀리서 닭이 운다.
난 이 장면 이후 한동안 골목길을 선뜻 들어서지 못했다. 어디선가 천우희가 스윽 나타날 것 같아서, 그 음산함이 나를 덮칠 것 같아서였다. 천우희에게 ‘네가 무서워졌다’고 카톡을 보냈을 정도다.
난 서구인들을 이해할 수가 없는데 끽해야 자기 혼자 혹은 집사나 일하는 사람까지 겨우 두셋이 사는 정도인데 언덕배기에 그토록 큰 저택에서 살아갈 이유가 있냐는 것이다. 방은 거의 위아래 층 10개에 가깝고 다이닝 룸이다 지하 창고다 뭐다 해서 비어 있는 공간이 한가득하고 거기마다 도통 음침하기가 이를 데 없다. 2층 침실에 누워 있을 때 아래층 어딘가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면 섬뜩하지 않겠는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 <레베카>에서도 그런 저택 어딘가에 남자가 미친 아내를 죽기 전까지 숨겨두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도 마찬가지다. 모두 집에서 벌어지는 공포다. 사람은 너무 큰 집에서 살 필요가 없다. 넷플릭스 드라마 ‘힐 하우스의 유령’은 그런 식의 대저택의 공포를 그리는 내용이다. 게다가 귀신 들린 집이다.
‘힐 하우스의 유령’의 주요 인물은 아버지와 다섯 남매다. 5남매는 26년 전 힐 하우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제는 뿔뿔이 흩어져서 살고 있고 큰아들 스티븐은 작가가 됐다. 최근에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은 기이한 일을 소재로 공포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첫째 딸 셜리는 장의사가 됐는데 그건 그녀가 어린 시절 유령을 하도 많이 봐서 시체 다루는 일을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둘째 딸 테오는 일종의 사이코메트리가 됐고 이 집안의 영매 역할을 한다. 셋째 딸 넬리와 둘째 아들 루크는 쌍둥이 남매다. 셋째 딸은 결국 이상한 일을 겪다가 죽었다. 루크는 약물중독자이자 소심한 성격의 남자가 됐다.
셋째 딸 넬리가 죽게 되는 그 이상한 일이 바로 이 10부작을 관통하는 핵심 사건이다. 넬리는 아이 때부터 침대 머리 위, 천장에서 내려다보거나 훅 다가서는 목 꺾인 여자의 환영을 본다. 넬리의 이 ‘정신적 혼란’은 엄마의 죽음 이후 더욱 심해진다. 엄마는 정신착란을 일으켰고 그런 엄마를 아빠가 죽였을 수 있다는 암시가 깔린다. 적어도 아이들은 그렇게 의심한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유령이 돼 집안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나타난다. 복도 저 끝은 늘 어두컴컴하다. ‘힐 하우스의 유령’은 가장 믿어야 할 사람을 가장 믿지 못하게 되는 상황, 그 심리적 트라우마가 만들어내는 공포를 그린다. 진짜 무섭다.
굳이 몰라도 되는 이야기지만 이 드라마를 만든 마이클 플레니건은 내용을 두 원작에서 가져온 듯이 보인다. 헨리 제임스의 소설 <유령의 집>과 셜리 잭슨의 동명소설 <더 헌팅 오브 힐 하우스(The Haunting of Hill House)>다. 드라마 ‘힐 하우스의 유령’의 원제가 ‘더 헌팅 오브 힐 하우스’다. 셜리 잭슨의 소설은 워낙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여서 1963년 로버트 와이즈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고, 1999년에는 얀 드봉 감독이 ‘더 헌팅’이란 제목으로 만들었다.
소름끼치는 영화들
다음은 안 봤다면 꼭 보라고 권해드리는 소름 끼치는 영화를 몇 편 짧게 언급한다.
일본 나카타 히데오 감독이 2001년에 만든 ‘검은 물밑에서’를 2005년 브라질 월터 살레스 감독이 제니퍼 코넬리를 캐스팅해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딸과 함께 낡은 아파트로 이사 온 여자는 계속해서 기이한 일을 겪는다.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계속 천장에서 물이 떨어진다. 위쪽 어디선가 그리고 누군가가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여자는 아이와 함께 건물 위에 설치된 물탱크로 올라간다. 그리고 물속에… 으아아악!!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나가는, 그러나 확실히 ‘돌아이’에 가까운 공포감독이 말레이시아계 미국인인 제임스 완이다. ‘직쏘’ 시리즈나 ‘컨저링’ ‘인시디어스’ 시리즈 모두 그가 제작하거나 감독하거나 각본을 쓴 작품들이다. ‘말리그넌트’의 여주인공은 폭력 남편에 시달리는 여자다. 어느 날 또 난동을 피우는 남편을 누군가 어둠 속에서 잔인하게 살해한다. 그때부터 여자에게는 ‘그 누군가가’ 따라다닌다. 정신 착란에 의한 것일까, 실제 존재하는 연쇄살인마일까, 아니면 그녀 자신일까. 결론이 정말 후덜덜이다. 2021년 작품.
오동진 영화평론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