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중국 문화관광국은 한국과 미국, 일본을 비롯한 세계 78개국에 중국인 단체여행을 전면 허용했다. 지난 2월과 3월 총 60개국에 대해 여행금지 빗장을 푼 데 이어서 사실상 중국인의 해외 단체여행 금지 조치를 전면 해제한 것이다.
중국이 해외여행 허용 정책을 전격적으로 들고나온 것은 미·중 패권전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이다.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협력을 강화하는 게 공급망 재편 등 글로벌 정세 변화에 대응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점에서다. 특히 칩4 동맹 등 중국의 첨단기술 발전을 제어하기 위한 미국 중심의 동맹체제가 굳건해질 경우 중국의 고립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이 큰 나라여도 한국, 미국, 일본, 대만이 분업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을 혼자 해내긴 어렵다”며 “한국, 일본과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 반도체 동맹의 ‘약한 고리’로 지목되는 한국을 향해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달 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양국 외교부 수장인 왕이-박진 회동이 열린 게 기점이 됐다.
왕 장관은 지난달 10일에는 중국을 방문한 반기문 보아오포럼 이사장을 만나 “중·한 관계는 한·중수교 30년 성과의 기초 위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다시 왕래와 협력을 진작하고, 양국 관계의 광활한 발전 전망을 열어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중 간에 양국 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번 단체여행 허가도 이런 공감대 속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발표된 각종 경제지표가 일본식 장기 불황을 가리키고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항공산업 등 경제 파급효과가 큰 관광산업 개방을 선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중국인들이 대규모로 여행을 떠날 것으로 보이는 중추절과 국경절 황금연휴(9월 29일~10월 6일)를 앞두고 해외 단체관광 허용국을 확대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했다는 관측이다.
1·2차 단체관광 허용국에서 제외된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미국 영국 독일 등 중국인이 선호하는 여행국이 이번 발표에 모두 포함됐다는 점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중국 관광업계 관계자는 “관광산업은 관련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며 “해외여행도 항공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다음달 23일부터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활발한 인적 교류 분위기를 조성하고 대(對)중국 우호 정서를 형성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도 있다.
베이징=이지훈 특파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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