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원제 사실상 폐지’ ‘중진의원 자진 용퇴’ ‘공천 룰 변경’ 등 김은경혁신위원회가 남긴 혁신안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반이재명계에선 이재명 대표 퇴임 요구가 이어지는 가운데 의원 대다수가 속한 중도파도 혁신안 수용을 거부했다. 당권을 쥔 친이재명계조차 일부 의원이 중진 용퇴론에 강한 반감을 나타내는 등 분열하는 모습이다.
11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선 혁신안을 두고 정반대 의견이 대립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전당대회는 내년 8월에나 치러지는데, 굳이 지금 대의원제를 폐지할 시급성이 없다”며 “공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총선 1년 전에 공천 룰을 확정하도록 한 당규를 뒤집으려는 시도 역시 민주당의 시스템 공천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가 임명한 서은숙 최고위원은 “더 많은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 혁신에 저항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혁신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낡은 존재로 만드는 길이라는 것을 자각하면 좋겠다”고 반박했다. 통상 최고위원들이 사전에 메시지 내용을 조율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날의 설전은 이례적이다. 이 대표는 이날 공개회의에선 혁신안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당내 논의를 거쳐 합당한 결과를 도출하겠다”며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당내 중도파 의원 모임들도 ‘혁신안 수용 불가’를 외쳤다.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는 성명을 통해 총선 전까지 대의원제 폐지 문제를 논의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전당대회 문제는 국민적 관심 사안도, 국민이 바라는 민주당 혁신의 핵심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친문재인 의원 모임인 ‘민주주의 4.0’도 혁신안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친이재명계 내부에서조차 반론이 제기됐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의원 제도를 없앨 수는 없다”며 “국민의힘이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투표의 가중치를 없앤 결과 전광훈 목사 같은 사람의 입김이 선거를 좌우하는 경향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3선 의원인 서 최고위원은 전·현직 다선 의원들이 자진 은퇴해야 한다는 혁신안 내용에 대해 “이미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초선 비중이 52%나 되는데도 (혁신위는)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만 얘기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반면 ‘혁신안 수용’을 외치는 진영에는 강성 의원과 원외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김용민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의원들이 당원이 아니라 대의원을 위한 정치를 하다 보니 민주당이 최근 선거에서 모두 패배한 것”이라며 “당원들이 요구한 검찰개혁을 거부해 선거 패배를 초래한 의원들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권 내부에선 혁신안 발표를 계기로 이 대표 체제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세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표가 임명한 혁신위까지 당내 공감대 형성에 실패하면서 ‘이재명 퇴진론’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고 있다는 평가다. 친문계의 좌장 격인 홍영표 의원은 이날 “당권사수안에 불과한 혁신안이 아니라 민주당의 도덕성 위기를 개선할 방안이 필요하다”며 “제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 대표 퇴진 요구를 암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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