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골프 선수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골프는 장갑 벗을 때까지 모른다’다. 작은 실수에도 손바닥 뒤집듯 순위가 바뀌는 게 골프기 때문이다. 13일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두산건설위브 챔피언십(총상금 12억원) 18번홀(파4)에서 벌어진 2003년생 동갑내기 이예원과 김민선의 연장전 승부가 그랬다.
연장전 과정만 놓고 보면 이예원보다 김민선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김민선은 키 177㎝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타를 앞세워 티샷으로만 163㎝인 이예원보다 족히 15m는 앞에 공을 떨궜다. 남은 거리가 짧다 보니 세컨드샷 역시 김민선이 유리했다. 이예원보다 짧은 아이언을 잡은 김민선은 홀 옆 약 4m 지점, 이예원은 두 걸음 먼 6m에 공을 떨어뜨렸다.
웃은 건 이예원이었다. 이예원의 퍼터 끝을 떠난 공은 다소 세게 굴러가는 듯했지만 깃대를 툭 치며 그대로 홀 안으로 사라졌다. 이예원의 우승 퍼트를 본 김민선은 전의를 상실한 듯 버디 퍼트를 홀 왼쪽으로 흘리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예원이 자신에게 첫 승을 선물한 ‘약속의 땅’ 제주에서 또 한 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예원은 13일 제주 서귀포시 테디밸리골프앤리조트(파72)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최종합계 10언더파 206타를 적어낸 뒤 이어진 연장 1차전에서 버디를 잡아 파에 그친 김민선을 따돌리고 우승했다.
이로써 이예원은 지난 4월 제주에서 열린 롯데렌터카 여자오픈에서 커리어 첫 승을 거둔 뒤 4개월 만에 2승을 수확해 ‘다승자 그룹’에 합류했다. 올시즌 2승 이상을 거둔 선수는 박민지(25), 박지영(27), 임진희(25)에 이어 이예원이 네 번째다. 또 우승상금 2억1600만원을 추가한 이예원은 누적 상금 7억992만원을 기록해 상금랭킹 1위로 올라섰다. 올시즌 상금 7억원을 넘긴 건 이예원이 처음이다. 대상 포인트에서도 2위로 올라서며 각종 개인 타이틀 경쟁에서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이예원은 단숨에 2승을 수확하면서 지난해 우승 없이 신인상을 차지해 얻은 ‘무관 신인왕’이라는 오명을 완벽히 떨쳐냈다. ‘연장전 승률’도 1승 1패로 균형을 맞췄다. 이예원은 6월 셀트리온 퀸즈마스터즈에서 연장 승부 끝에 박민지에게 패해 고개를 숙였다. 이예원은 “처음 치른 연장전에서 진 다음에 다시 기회가 오면 꼭 이기겠다고 다짐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패배를 설욕했다”고 기뻐했다.
이예원은 이번 대회 1라운드까지만 해도 우승과 거리가 멀었던 선수다. 10일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예정됐던 1라운드가 취소됐고, 하루 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재개된 1라운드에서 1타를 줄이는 데 그치면서 선두에 5타 뒤진 공동 38위로 출발했다. 하지만 2라운드에서 5타를 줄이며 공동 6위로 올라서더니 최종라운드에선 대회 내내 가장 어려웠던 홀(3위) 중 하나인 16번홀(파4)에서 버디를 낚아채며 승부를 뒤집었다.
마지막까지 우승 싸움을 한 김민선은 비록 우승컵을 놓쳤으나 티샷마다 230m 넘게 보내는 장타쇼를 펼치는 등 팬들의 뇌리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또 데뷔 이후 최고 순위라는 수확을 거두면서 준우승 상금 1억3200만원을 획득해 74위였던 상금랭킹을 31위(1억9576만원)까지 끌어올려 내년 시드 확보 안정권에 들었다.
2라운드까지 단독 선두로 나섰던 박현경(23)은 샷 난조로 되레 1타를 잃고 8언더파 208타 공동 4위로 대회를 마쳤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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