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가 또다시 휘청이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금리 인상 종료 기대에 지난달 18일 1260원 선까지 하락한 원·달러 환율이 한 달도 안 돼 1320원대를 돌파하면서다. 특히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중국의 경기 둔화와 부동산 위기 등 대외 악재가 터질 때마다 정작 달러나 위안화 또는 다른 통화보다 원화 가치가 유독 더 빠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원화는 다른 나라 통화에 비해 대외 변수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게 문제다. 1일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춘 뒤 10일 만에 원화 가치는 미 달러화 대비 3.4% 급락했다.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 등 주요국 통화는 물론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신흥국 통화도 달러 대비 0~1%대 하락하는 데 그친 것과 비교해 원화가 유독 약세를 보였다. 게다가 정작 미 달러화는 유로, 캐나다달러, 엔, 파운드, 스위스프랑, 스웨덴 크로네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0.5% 올랐다. 신용등급이 강등된 건 미국인데 달러화는 오히려 강세를 보이고, 원화는 달러화 대비 큰 폭으로 하락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상적이라면 신용등급이 떨어진 국가에서 자본이 유출돼야 하지만 오히려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달러 표시 자산 수요가 커지며 환율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7월 한국 주식을 6410억원어치 순매수한 외국인은 환율 상승 여파로 이달 2~11일까지 3753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한국 시장과 원화가 여전히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위험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의미다.
원화는 지난 3~4월 미국의 금리 인상 종료 기대로 달러가 약세로 돌아섰을 때도 ‘나홀로 약세’를 기록했다. 당시 달러 가치가 주요국 통화 대비 2.7% 하락할 때 원화 가치는 달러화 대비 1.5%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취약해진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지난달까지 수출은 10개월 연속 감소했다. 올 들어 무역수지 적자도 278억달러에 달한다. 역대 최대로 벌어진 한·미 금리 차도 환율 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계부채와 경기 침체 우려 때문에 한국은행은 금리 인상에 나서기 힘든 게 현실”이라며 “원화 약세 압력은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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