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은 집권 초인 2017년 7월 신베를린 선언을 통해 “북한 주민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대해 국제사회와 함께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듬해 12월 인권의 날 기념사에선 평화와 인권을 결부시켰다. 그는 “냉전의 잔재를 해체하고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인권과 사람다운 삶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평화와 남북한 관계 개선을 선결 조건으로 삼고, 북한 인권은 뒤로 미뤄버린 것이다. 그 이후 ‘문재인식 평화’ 추구만 있을 뿐 북한 인권은 금기어가 됐다. 오히려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님의 생명 존중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 북한이 얼마나 평화를 갈망하는지 절실하게 확인했다”고 했다. 평화가 오고 있으니 인권은 언급할 가치가 없게 된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국내와 북한 인권을 철저하게 이중잣대로 들이댔다. 그는 1997년 한국인 선장을 포함해 11명이 잔인하게 살해된 페스카마호 사건의 조선족 살인범 6명을 변호한 적이 있다. 그는 이들에 대해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탈북 귀순 어민들을 포승줄로 묶어 군사분계선으로 끌고 가 사지로 넘겨버렸다. 문 정권은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에 불참했고, 더불어민주당은 7년째 북한인권재단 이사를 추천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는 일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공석이던 북한 인권대사를 임명하고, 북한 인권 개선을 핵심 과제로 삼고, 관련 조직도 늘리고 있다.
인권 문제 제기는 체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있다. 1975년 헬싱키 협약의 제3항 인권 보호, 사상·양심·신념의 자유 보장이 공산권 붕괴의 단초가 된 게 대표적인 예다. 민간단체들이 체제의 비인간성에 대해 압박을 가했고, 소련과 동구권 시민들이 자유와 인권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저항에 나서게 됐다. 핵물리학자 안드레이 사하로프를 중심으로 소련의 가혹한 반체제 인사 탄압과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 등을 고발하면서 사회 저변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서독은 통일 직전까지 동독의 인권 침해 사례 4만여 건을 수집하고 가해자 8만여 명의 신원을 특정하는 등 인권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동독 주민들에게 자유와 인권 의식을 불어넣어 준 것은 독일 통일의 기폭제가 됐다. 마찬가지로 북한 주민이 인권에 대한 중요성을 자각하고 개선하도록 하는 것은 체제 변화를 유도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열어주게 하는 대북 심리전이 중요하다.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가 어떻게 유린당하고 있는지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은 김정은에게 핵보다 더 무서운 비수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문 정부가 밀어붙인 대북전단금지법은 악법 중에 악법이다. 북한은 갈수록 핵·미사일 도발 수위를 높이는데 문 정부는 강력한 비대칭 전략자산인 전단을 금지하는 법을 김정은에게 헌상했다. 9·19 합의, 4·27 판문점 선언 등에 남북한 상호 비방을 금지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이런 합의와 선언을 스스로 사문화시킨 마당이다.
통일부가 현행 법체계 내에서도 대북 심리전 재개를 검토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대북전단금지법 23조 2항(대통령은 기간을 정하여 남북합의서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 등을 활용한다면 법 개정 없이도 전단 살포, 확성기 방송이 가능해진다고 보고 있다. 북한 주민도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기본 책무다. 인권 문제 제기는 김정은의 아킬레스건을 끊고, 폐쇄적 철권 통치를 흔드는 주요 수단이다.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진실이 알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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