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신실·김수진도 줄세운 '퍼팅 일타 강사'

입력 2023-08-15 18:22   수정 2023-08-16 00:25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7승을 올린 이승현(32)은 요즘 인생 1막 못지않게 ‘화려한 2막’을 보내고 있다. 유명 프로골퍼들이 앞다퉈 찾아와 한 수 과외를 부탁하는 ‘퍼팅 일타 강사’가 돼서다. 그의 제자 리스트에는 방신실(19) 고지우(21) 홍지원(23) 김수지(27) 박보겸(25) 등 KLPGA투어 1부 선수만 40명 넘게 적혀 있다. “지난해 김수지가 이승현을 찾아간 뒤 2승을 수확했다”는 얘기가 돌면서 ‘선수 손님’ 목록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그런 이승현을 지난 10일 서울 양재동 ‘이승현골프스튜디오’에서 만났다. 2021년까지 현역으로 뛴 그는 지난해 5월 선수 생활을 접고 이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이것저것 다 가르치지 않고 오직 퍼팅만 가르친다. 현역 시절 이승현에게 7승을 안겨준 비법을 전수하는 학원을 차린 셈이다.

이승현은 “‘퍼팅의 신’(현역 시절 별명)이 학원을 차렸다는 소문이 퍼지며 문을 연 지 1년 만에 제자 수가 100명을 넘었다”며 “제자 중에는 남자 프로선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 때는 1주일에 이틀 정도 자유시간이 났는데 선생이 된 뒤론 주 6일 근무 체제로 바뀌었다”며 “선수 때는 나만 잘하면 됐지만 이제는 수많은 제자의 성적을 챙겨야 하니 심적 부담도 커졌다”고 덧붙였다.

이승현은 현역 시절 남다르게 비거리가 많이 나거나 아이언샷이 정확한 선수는 아니었다. 오로지 퍼팅으로 메이저대회 2승을 포함해 7승을 쓸어 담았다. 평균 퍼팅 순위는 데뷔 해인 2010년부터 은퇴를 준비하던 2018년까지 한 번도 5위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다. 이승현은 “잘될 때는 10m 밖에서도 넣는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며 “그냥 공 뒤에서 그린을 바라보면 ‘모세의 기적’처럼 퍼팅 라인이 쫙 갈라졌다”고 했다.

‘좋은 선수는 좋은 스승이 될 수 없다’는 스포츠 격언이 있다. 현역 시절 자신이 했던 것만큼 왜 제자들이 못 하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승현의 교습법은 다르다. 퍼팅 기술만 가르치지 않는다. 퍼팅을 준비하는 선수의 루틴과 심리 상태까지 돌본다. 그래야 퍼팅이 안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어서다.

이승현은 “현역 때는 나도 어떤 생각으로 퍼팅했는지 몰랐는데 선수들을 가르치며 깨닫고 있다”며 “스코어를 결정하는 퍼팅을 앞두고 선수는 유독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런 것들을 이겨내는 방법을 최대한 많이 알려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증강현실(AR) 등을 이용한 ‘펏뷰’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해 데이터를 분석한다. “제게 오는 선수는 이미 정상급 실력을 갖췄기 때문에 자기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데이터로는 파악하고 있죠. 제 역할은 데이터가 설명해주지 않는 ‘숨은 실수’를 찾아주는 것입니다. 반복 훈련을 통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순간에도 퍼팅에 성공하게끔 도와주는 게 저의 몫이죠.”

선수들이 워낙 많이 찾다 보니 아마추어 레슨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그에게 아마추어 골퍼를 위한 팁을 부탁했더니 이런 답을 들려줬다.

“퍼팅은 셋업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몸 구조는 사람마다 다르니 자신에게 맞는 자세를 찾아야 해요. 먼저 팔에 힘을 빼 툭 하고 땅으로 떨어뜨린 뒤 그대로 그립을 잡아보세요. 양손으로 그립을 살짝 쥐면 팔과 몸 사이에 오각형이 생길 거예요. 그 오각형을 스트로크 내내 유지합니다. 스트로크는 일정한 리듬으로, 세기는 스윙 크기로 조절하세요. 연습을 반복하면 한 경기에 다섯 타는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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