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분쯤 지나자 60개 돈 뭉치가 팔레트에 쌓였다. 컨베이어 벨트가 다시 움직였다. 300억원은 그렇게 눈앞에서 사라졌다. 컨베이어 벨트에 현금이 올라온 이후 돈 뭉치를 직접 만진 사람은 없었다. '6분만에 사라진 300억원'은 사건사고는 아니었다. 한은이 이날 공개한 자동화금고시스템의 발권업무 처리 장면이다.
자동검수기가 화폐의 시각정보와 무게를 식별해 검수하고, 팔레타이징로봇이 수납화폐를 팔레트에 자동으로 적재한다. 적재가 완료된 팔레트는 수직반송기가 옮긴다. 금고에 들어온 팔레트는 무인운반장치(AGV)를 통해 금고 내에 적재된다. 출고시에는 이 과정이 역으로 진행된다.
한은은 지난 2017년부터 자동화금고시스템 도입 추진계획을 짰다. 2020년부터 구축을 시작했다. 시스템 개발은 LG CNS가 맡았다. 기계 도입 등에만 수억원이 든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화시스템을 통한 발권업무가 시작된 것은 이달 8일부터다. 한은 별관을 신축하고, 본관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금고까지 새롭게 단장한 것이다.
종전까지는 발권업무는 대체로 사람의 몫이었다. 두 사람이 직접 육안으로 화폐를 검수했고, 직원들이 직접 팔레트에 쌓았다. 이동은 지게차를 사용해야했다. 금고의 규모가 크더라도 지게차의 팔이 닿지 않는 위치에는 팔레트를 쌓기 어려웠다.
김근영 한은 발권국장은 "자동화금고 시스템의 도입으로 자동화율이 40%에서 70~80%까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또 자동화금고시스템 도입 이후 지게차가 닿지 않는 곳까지 적재가 가능해지면서 금고 적재용량이 약 30% 가량 늘었다고 설명했다. 5만원권만으로 채우면 수십조원이 저장될 수 있는 규모다.
다만 화폐 사용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한은이 예산을 투입해 대규모 금고를 구축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화폐없는 세상이 현실화하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개발도 추진 중인 상황에서 실제 현금의 사용이 급감한다면 애써 구축해놓은 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같은 질문에 대해 김근영 국장은 "화폐사용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물 화폐의 본질적 기능이 있어서 완전히 없어질 수는 없다고 본다"며 "국민께 좀 더 나은 서비스를 하기 위해 자동화금고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