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온이 충남 서산공장에 1조5000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것은 국내 공장을 ‘마더 팩토리’로 키우기 위해서다. 해외에 신설하는 공장을 빠르게 안정화하기 위해 노하우를 쌓는 핵심 시설로 삼는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실적의 발목을 잡아온 해외 공장의 생산 효율성을 지금보다 더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를 위해 회사는 서산3공장을 스마트 팩토리로 짓고, 생산 속도를 기존 라인보다 30% 이상 단축할 계획이다.
SK온은 서산공장의 생산 규모를 기존 연 5GWh에서 2025년 연 20GWh로 네 배로 키우겠다고 16일 발표했다. 연 20GWh는 전기차 28만 대에 배터리를 장착할 수 있는 양이다.
통상 배터리 기업은 완성차의 전기차 생산라인과 가까운 곳에 공장을 짓는다. SK온이 그동안 미국과 유럽에 먼저 투자한 이유다. 미국에선 포드와 함께 10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고, 유럽에선 폭스바겐 등에 납품하기 위해 헝가리 공장을 증설 중이다.
그럼에도 SK온이 이번 투자를 결정한 이유는 해외 공장을 조기에 안정화하기 위해선 국내에서 생산 기술력 확보가 필수라는 판단에서다. 배터리 공장을 신설해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을 90% 안팎으로 끌어올리는 데 통상 3년가량 걸린다. 현지 기후 조건에 따라 원자재 배합 비율이나 공정을 미세하게 바꾸는 건 엔지니어의 노하우에 의존해야 한다.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는 상황에서 3년을 기다리긴 어렵다.
SK온은 서산공장을 마더 팩토리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공정을 디지털 전환(DX)하는 스마트 팩토리를 통해 글로벌 공정의 수율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생산 효율성 개선을 ‘제1 목표’로 삼는 SK온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SK온뿐 아니라 다른 배터리 기업들도 국내 마더 팩토리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연 20GWh인 충북 오창에너지플랜트 생산능력을 연 33GWh로 키우기로 했다. 삼성SDI는 천안 사업장에 46파이 원통형 배터리 시험생산 라인을 만들고 있다. 울산공장에는 국내 첫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생산 라인을 구축하는 방안을 울산시와 논의 중이다.
SK온은 현대차·기아에 가장 많은 전기차 배터리를 납품하고 있다. 현재 현대차의 아이오닉 5, 제네시스 GV60와 GV70 전기차, 기아의 EV9 등에 SK온의 파우치형 배터리가 쓰인다. 울산 신공장에서 생산될 것이 유력한 제네시스의 차세대 전기차 GV90와 2025년 출시 예정인 기아 EV7에도 SK온 배터리가 적용될 예정이다.
SK온은 현대차·기아 외 국내 완성차 기업에도 폭넓게 배터리를 공급하겠다는 목표다. 국내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고 싶지만 배터리 조달이 어려워 애를 먹는 르노코리아 등이 대표적이다.
SK온의 투자는 국내 배터리 장비 및 소재 업체에 낙수 효과로 이어질 것이란 점도 의미가 있다. 회사는 투자액 중 상당 부분을 국내 기업이 생산하는 배터리 장비를 구입하는 데 활용한다. 에코프로그룹(양극재), SK IET(분리막) 등 SK온의 공급망에 해당하는 기업의 납품량도 늘어날 전망이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 인프라를 강화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요람의 기능도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빈난새/김형규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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