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짜리 8만원에"…지자체, 국비로 선심

입력 2023-08-16 18:25   수정 2023-09-21 09:28


전북 익산시에선 현금 9만원을 내면 10만원짜리 지역화폐를 살 수 있다. 이 상품권으로 지역 가맹점에서 10만원을 결제하면 결제액의 10%인 1만원을 돌려받는다. 소비자는 지역화폐를 쓰면 10만원어치 물건을 8만원에 살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차액을 익산시 예산뿐 아니라 중앙정부 세금으로 메운다는 점이다. 전국적으로 이런 지역화폐 발행이 늘면서 특정 지역 주민에게만 돌아가는 혜택을 정부 돈으로 보전해주는 게 바람직하냐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16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지역화폐 발행액은 27조2196억원으로 전년(23조5871억원)보다 15.4% 증가했다. 2018년 4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던 발행액이 4년 만에 68배 넘게 급증했다. 전국 243개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 중 190곳(약 78.1%)이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지역 사업을 벌이면서 선심성 유인 수단으로 지역화폐를 살포하기도 한다. 예컨대 전남 나주시는 오는 21일부터 12주간 지역 주민 대상 ‘비대면 체중 감량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목표만큼 살을 뺀 참가자에게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인 나주사랑상품권을 지급한다. 경북 봉화군은 이달 봉화사랑상품권을 내건 요리 경연대회를 연다. 참가만 해도 상품권 3만원어치를 주고 수상팀에는 최대 30만원의 상품권을 준다. 이와 관련, 행안부는 “지자체 자체 예산만으로 지급하는 지역화폐”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국비 지원으로 재정 여력을 확보한 덕분에 이런 지역화폐 지급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화폐는 소상공인을 지원해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취지로 지자체가 발행하는 상품권이다. 지자체는 지역화폐를 7~10% 할인해 판매하거나 결제액의 일부를 돌려준다. 재정 여건이 좋아 보통교부세를 받지 않는 서울시, 경기 성남시 등은 국비 지원이 없지만 대부분 지자체는 국비를 지원받는다.

올해 지역화폐 국비 지원액은 3525억원이다. 국비 지원이 시작된 2018년(100억원)과 비교하면 35배가량 늘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7000억원이던 국비 지원을 올해 예산에서 전액 삭감하려 했지만 야당 반발에 밀려 절반가량만 줄였다.

지역화폐는 당초 국비 지원 없이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사업이었다. 2018년 전북 군산시 등 고용 위기 지역에 한정해 시작한 국비 지원이 코로나19를 거치며 전국으로 확대됐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공격적인 확장 재정을 펼친 2021년에는 지역화폐 국비 지원이 1조2522억원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지역화폐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역화폐의 경제 효과는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많다. 조세재정연구원은 2020년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 경제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서 당시 지역화폐에 대한 9000억원 규모의 보조금(국비+지방비) 중 경제적 손실이 2260억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소비자 후생으로 이전되지 못한 손실이 460억원, 인쇄비·금융수수료 등 부대비용이 1800억원에 달했다는 것이다. 지역화폐가 일부 지자체에선 학원비나 병원비로 쓰이는 등 일종의 선심성 현금 지원 사업으로 변질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역화폐는 재정 투입 대비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며 “효과가 있더라도 그 효과가 지역에 한정되기 때문에 국비보다는 지역 예산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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