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민방위복은 1975년 민방위 제도 도입 이후 카키색이었다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8월부터 노란색(라임색)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8월 을지연습 때부터 청록색 민방위복이 등장했다. 행정안전부는 새 민방위복 도입 계획을 밝혔다.
당초 청록색 민방위복 착용은 권고였다. 대통령과 총리 주재 회의에서도 청록색과 노란색 민방위복을 입은 공무원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행안부는 지난 6월 민방위기본법 시행규칙을 바꿔 이달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오는 21~24일 을지연습부터 원칙적으로 청록색 민방위복을 입어야 한다.
행안부는 각 기관의 예산 사정을 감안해 민방위복을 점진적으로 교체하는 걸 허용하긴 했다. 하지만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는 새 민방위복을 구입하느라 비상이 걸렸다. 당초 계획에도 없던 예산을 새로 편성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일부 공공기관 직원은 사비로 민방위복을 구입하지만, 중앙부처와 지자체는 예산을 들여 일괄적으로 구매한다.
가격은 한 벌에 5만원 안팎이다. 지난해 국가·지방 공무원 수가 117만3022명인 걸 감안하면 새 민방위복 구입에 6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이 소요된다. 더욱이 공무원은 춘추복과 하복 등 두 벌의 민방위복을 구입해야 한다.
여론은 곱지 않다. 정부가 멀쩡한 기존 민방위복 대신 새 민방위복을 도입하는 설득력 있는 이유를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행안부는 새 민방위복이 현장 활동에 필요한 방수·난연 등 기능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는 국민이 많다. 색상 변경에 대해선 마땅한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세월호 참사 등을 거치면서 노란색 민방위복에 대한 반감이 커지자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민방위복을 바꿔 입는다고 공무원의 안보·안전 의식이 갑자기 높아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세수 펑크가 심각한 상황에서 교체 이유도 모호하고, 당장 시급하지도 않은 민방위복 도입에 정부와 지자체가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이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나랏돈 낭비 아니냐는 논란을 피하기 힘들다. 민방위복 바꿀 돈을 홍수나 가뭄 같은 재난 예방에 쓰는 게 먼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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