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도체는 전기 저항이 제로인 꿈의 물질입니다. 연구진 이름을 딴 LK-99는 상온·상압에서 구현된다는 해석 덕분에, 논문 기고자들이 노벨상 후보로 불리기까지 했습니다.
초전도체 테마주로 분류된 종목은 며칠 전까지 줄줄이 상한가를 기록했습니다. 미국 중국 인도 등에서 상온 초전도체 성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으나 한 번 뛴 주가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틀 전 보나사피엔스라는 1인 기업 대표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LK-99는 상온 초전도체가 맞는다. 축하한다.”는 글을 띄우자 잠시 주춤했던 관련주는 또 다시 춤을 췄습니다. 보나사피엔스는 2019년 설립된 소프트웨어·부동산 자문 스타트업입니다. 초전도체 논란 이전 무명에 가까웠던 이 회사 대표의 SNS가 어떻게 증시에서 회자됐는 지도 의문입니다.
지금은 ‘상온 초전도체 개발 성공’을 믿는 투자자가 많지 않습니다. 관련주들도 일제히 하한가로 직행했습니다.
결정적으로 학술지 네이처가 “LK-99는 초전도체가 아니다”고 판정한 데 이어 한국초전도저온학회 LK-99 검증위원회가 “초전도성을 나타내는 측정 결과가 없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서울대, 성균관대, 고려대, 부산대, 한양대, 성균관대, 경희대 연구진이 공동으로 재현 실험에 참여한 결과입니다.
초전도체 이슈는 또 다른 이유로 씁쓸한 뒷맛을 남겼습니다. 초전도체 테마 덕분에 주가가 뛰었던 종목의 일부 대주주들이 이 틈에 차익 실현에 나섰던 겁니다.
서남 최대주주였던 어플라이드벤처스는 급등장 속에서 지분을 전량 털어냈습니다. 최대주주 자리를 7년간 지켜온 전략적투자자(SI)가 이번 이슈로 서남과 남남이 됐습니다.
파워로직스 최대주주인 탑엔지니어링과 특수 관계자들도 연속 상한가 속에서 일부 지분을 매도했습니다.
기업 내부 정보를 가장 잘 알고 있을 최대주주들의 차익 실현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초전도체 호재가 오래 가지 않거나, 적어도 관련 사업 비중이 크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의미일 겁니다.
미국에선 최대주주나 임직원이 자사 지분을 처분하기 위해선 금융당국(SEC)에 사전 보고하고, 투자자들에게 공시해야 합니다. 국내엔 관련법이 미비합니다.
또 하나는 덕성 서남 LS전선아시아 등 테마주로 분류된 기업들이 “우린 초전도체와 관련 없다”는 부인 공시를 냈으나 개인 투자자들이 믿지 않았다는 겁니다. 과학이나 팩트 대신 테마를 신봉한 겁니다.
제2의 초전도체 논란은 언제든 또 생길 수 있습니다. 18일에도 ‘맥신’ 관련주로 분류된 태경산업 경동인베스트 휴비스 나인테크 코닉오토메이션 등이 오전부터 무더기 상한가를 기록했습니다.
맥신은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나노물질입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진이 맥신 표면에 붙은 분자의 종류와 양을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맥신 테마주’ 열풍을 불러왔습니다.
초전도체 이슈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기엔 조금 이릅니다. 맥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빨리 끓는 물이 빨리 식습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조재길 마켓분석부장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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