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1부(재판장 김선수)는 최근 근로자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강등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전라북도 경제통상진흥원에서 근무하던 A씨는 2019년 5월 여성 직원을 억지로 포옹하거나 지압하고 외모 순번을 매기는 등의 성희롱·성추행으로 직급이 3급에서 4급으로 떨어지는 징계를 받았다. A씨는 이에 반발해 노동위원회에 ‘부당강등 구제 신청’을 했다가 기각되자 중노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근거 규정이 근로자 과반이나 노동조합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징계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B사의 인사 규정은 과거 견책, 감봉, 정직, 해임(파면)으로 돼 있었는데 2018년 11월 취업규칙 개정을 통해 강등이 추가됐다. 이 과정에서 성 관련 위법 행위는 강등 처분까지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신설됐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하려면 근로자 과반의 집단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사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회사의 강등 제도 도입은 해임과 정직 사이의 폭이 넓어 책임에 비례하는 징계를 내리기 어려웠던 점을 보완한 것”이라며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이 바뀐 것이긴 하지만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은 규칙 개정의 필요성과 근로자의 불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따졌을 때 취업규칙 변경이 정당하다고 판단되면 근로자 과반의 동의가 없어도 유효하다고 보는 원칙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하지 않고 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지난 5월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을 침해한다”며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7 대 6으로 나눠졌을 정도로 대법원 안에서도 이 원칙의 유·무효를 두고 첨예한 공방이 이뤄졌다.
대법원이 연이어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리면서 기업들이 취업규칙 변경 때 한층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아무리 사소한 변경이어도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받게 됐다”며 “이전보다 기업 인사관리가 경직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성/곽용희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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