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등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가 ‘묻지마 범죄’ 예고글의 온상이 됐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 서현역 ‘묻지마 칼부림’ 사건 이후 전국적으로 올라온 수백 건의 살인 예고글 가운데 대부분이 디시인사이드 이용자가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에는 또 다른 익명게시판 블라인드에 경찰을 사칭한 살인 예고가 게재돼 논란이 되고 있다. 이들 온라인 커뮤니티는 경찰 수사 협조에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수사당국이 애를 먹고 있다.
블라인드는 직장인 중심의 대표적인 익명 커뮤니티다. 직장 이메일 계정으로 소속 신분을 인증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의 직장을 확인할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계정을 쉽게 사고팔 수 있어 소속 직장에 대한 신뢰성이 높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역시 블라인드에선 직장이 경찰청으로 나오지만 실제론 국내 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블라인드 본사와 서버가 미국에 있어 제대로 된 수사는 여의찮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A씨 등은 글을 올려도 수사기관에 잡힐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익명성으로 인한 부작용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별다른 가입 절차나 로그인이 필요 없는 디시인사이드는 수년째 논란이 되고 있다. 디시인사이드는 하루 방문자가 260만 명, 하루평균 게시글은 약 100만 개에 달한다. 이날 부천원미경찰서는 디시인사이드에 박형준 부산시장을 테러할 예정이라는 글이 올라와 게시자를 특정하기 위한 수사에 들어갔다. 작성자는 “테이저건으로 부산시장 쏘면 돼?”라고 말했다. 서현역 묻지마 칼부림 피의자도 디시인사이드에 살인 예고글을 올린 바 있다.
경찰은 이날 오전 9시까지 전국적으로 살인 예고글을 올린 213명을 검거했는데 상당수가 디시인사이드 이용자였다. 이들은 경찰조사에서 대다수가 “장난삼아” “홧김에” 등의 이유로 글을 올렸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로그인 장치 등이 없어 추적이 쉽지 않다”며 “해당 커뮤니티가 사회적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적절한 통제 장치나 수사 협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이트 강제 폐쇄는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반대 목소리가 있다. 국회에서도 커뮤니티 폐쇄 조항이 담긴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모두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원 역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놨다. 서울중앙지법은 2021년 10월 가수 강다니엘이 제기한 디시인사이드 ‘프로듀스 101 갤러리’ 폐쇄 요구 소송에서 “인터넷 게시공간에 게재되는 표현물에 대한 지나친 간섭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할 수 있다”고 원고 패소 판결한 바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커뮤니티 폐쇄는 이용자들이 다른 사이트로 옮겨가는 풍선효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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