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바다주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관련 보고를 받자마자 “과거에 내가 프리고진이라면 조심할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죽음이) 놀랍지 않다.”고 말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프리고진이 러시아에서 암묵적인 제거 대상 목록에 올랐던 건 푸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됐던 전력 때문입니다.
‘푸틴의 요리사’로 불렸던 고급식당 경영자 출신 프리고진은 2014년 용병그룹 바그너를 창설했습니다. 러시아 정부가 직접 나서지 못하는 세계 각지의 분쟁에 개입해 세력을 크게 확대했습니다. 음지에서 일하며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작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한 뒤엔 선봉대로 나서 우크라이나 동부 요충지 바흐무트를 점령하는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러시아 군부와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습니다. 지난 6월엔 군 수뇌부 처벌을 요구하며 반란까지 일으켰습니다.
바그너그룹은 무장 봉기 직후 러시아 서남부 군 시설을 장악했고, 모스크바 200㎞ 선까지 북진했습니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용병들의 반란에 거의 25년간 이어져온 푸틴의 막강했던 통치 권력이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푸틴 신봉자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적극적인 중재로 북진을 멈추고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프리고진과 용병들도 처벌을 면제 받았습니다. 물론 프리고진 개인에 대한 신변 위험이 사라졌던 건 아닙니다.
이번에 프리고진이 사망한 과정도 극적입니다. 프리고진은 이날 모스크바에서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엠브라에르 레가시 전용기에 타고 있었습니다. 최대 14명까지 탑승 가능한 소형기입니다.
러시아군 방공망이 정확히 요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탑승객 10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프리고진 때문에 승무원 3명 등 부수적 피해가 발생한 겁니다.
의심이 많은 프리고진도 대비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같은 항공기를 동시에 두 대 띄웠으나, 방공망은 정확히 프리고진 비행기만 격추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공식 확인이 어렵겠지만 푸틴의 직접적인 지시 없이는 어려운 일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와 달리 별도의 재판 절차도 없었습니다.
주요 인물들이 커다란 의문을 남긴 채 갑자기 사망하는 일은 전체주의 국가인 러시아에서 드물지 않습니다. 반대 세력에 대한 푸틴의 공개 경고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러시아 부동산 재벌 드미트리 젤레노프는 작년 말 프랑스 지방 도시에서 거주지로 돌아가던 중 계단에서 굴러 사망했습니다. 모스크바항공대학 총장을 지냈던 아나톨리 게라셴코, 최대 민영 석유업체 루크오일의 라빌 마가노프 이사회 의장, 천연가스 업체 가스프롬 임원을 맡았던 알렉산드로 튤라코프 등 전쟁에 부정적이던 인물들이 하나같이 추락사하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번 프리고진 사망에 따른 후폭풍도 주시해볼 만합니다. 프리고진은 기업인이나 야당 인사들의 사례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를 따르던 바그너그룹 용병만 5만여 명에 달합니다.
프리고진의 죽음은 전체주의 폭력성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는 평가입니다. 1인 또는 기득권 세력의 안위를 위해선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세계 2위 군사·경제 대국인 중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체주의 체제이냐는 논란이 있겠습니다만, 시진핑 국가주석 개인에 대한 권력 집중이 지나치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시진핑은 작년 10월 3연임을 확정하고 정부 및 당 지도부를 전부 측근으로 재편했습니다. 15년 이상 장기 집권할 게 확실시됩니다.
전체주의 권력은 자신의 이해를 위해 주변 희생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국을 포함한 해외 시장 투자자들이 유의해야겠습니다.
조재길 마켓분석부장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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