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롤 모델

입력 2023-08-24 18:16   수정 2023-08-25 00:11

내가 어린 시절엔 위인전을 읽고 그들의 업적과 삶을 동경하며 꿈을 키우는 일이 흔했다. 그리고 위인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주변에서 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사람을 통해 성장의 원동력을 얻곤 한다. 그들을 인생의 ‘롤 모델’이라고 칭한다. 나의 첫 번째 롤 모델은 퀴리 부인이었다. 학부 시절 화학 전공을 선택한 계기도 이런 존경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

이후 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계에 몸담으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받으며 성장했다. 미술사에 관한 지식이나 작품에서 얻는 영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얻는 교훈이었다. 그중에서도 의미 있는 경험 중 하나는,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에서 이사회 임원인 데버라 로넨과 함께 일한 순간이다. 그녀의 우아한 태도와 지도력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줬다. 그녀와 나눈 여러 작가에 관한 이야기와 의미 있는 대화는 내게 큰 자양분이 됐다.

일본문화원갤러리에서 근무할 당시 만난 알렉산드라 먼로 디렉터 역시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아시아 현대미술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을 뿐 아니라 학술적 명성과 함께 훌륭한 인성과 태도를 갖췄다. 만날 때마다 내게 큰 영감을 줬다. 먼로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직원들을 집으로 초대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항상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잃지 않았다. 그녀를 통해 리더십의 핵심은 사람에 대한 배려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미술계에 있으면서 겪은 또 다른 감명 깊은 경험이 있다면, 훌륭한 컬렉터들과의 교류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필자는 다양한 시각과 경험을 얻었는데, 특히 김창열, 운보 김기창 등 다수의 한국 작가의 작품을 소장한 스위스 여성 컬렉터와의 교류는 한국인으로서 매우 뜻깊은 경험이었다. 컬렉터들은 예술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데, 그들과의 교류는 예술이 가진 힘과 가치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해줬다.

하물며 직장은 어떠한가. 우리는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동료들과 상사로부터 영향을 주고받는다. 상사와 직장동료를 통해 배운 리더십, 협업, 소통의 중요성은 커리어는 물론 인생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돌아보면 나 역시 미술계에서 만난 모든 분의 독특한 강점과 가치관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들을 통해 다양한 영감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각자는 누구나 타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장점을 품고 있다. 성장하기 위해 늘 열린 마음을 갖고 다른 이들과 끊임없는 소통과 공유를 통해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길, 그렇게 함께 발전하는 기회와 순간을 경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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