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상종’은 국내 골프장 지형도를 설명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좋은 골프장이 몇몇 특정 지역에 몰려 있어서다. 이스트밸리, 남촌, 곤지암, 렉스필드 등 명문 구장이 모인 경기 광주 곤지암 일대가 대표적이다. 교통 편하고 풍광 좋으니, 자연스럽게 ‘골프 8학군’이 됐다.
아마추어 골퍼들 사이에선 경기 가평군 설악면도 곤지암 못지않은 ‘성지’로 꼽힌다. 접근성(서울 강남 기준)은 곤지암에 미치지 못하지만 풍광만큼은 한 수 위란 이유에서다. 벽계9곡에서 내려온 물길, 산세 좋은 곡달산과 통방산은 청평 마이다스밸리, 아난티 서울, 프리스틴밸리, 클럽 모우 등의 ‘몸값’을 끌어올렸다.
그중에서도 프리스틴밸리GC는 설악면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골프장이란 평가를 받는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pristine)’이란 골프장 이름 그대로다. 휴양림에 온 듯이 산과 물을 마주하며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이 골프장의 얼굴을 만난다. 둥그런 그린 뒤로는 산이, 앞으로는 널따란 연못이 펼쳐져 있는 밸리코스 2번홀(파3)이다.
총 부지 65만 평(약 241만8760㎡) 가운데 35만 평(약 114만7024㎡)만 떼내 18홀을 넣었다. 코스가 산속에 아늑하게 안긴 모양을 갖춘 배경이다. 프리스틴코스는 곡달산을, 밸리코스는 통방산의 기운을 받도록 꾸몄다.
처음 설계할 때는 18개 홀 가운데 티잉구역에서 그린이 보이지 않는 블라인드 홀이 한 곳도 없었지만, 20년 세월은 몇몇 홀을 ‘깜깜이’로 만들었다. 볼품없던 나무들이 나이가 들면서 가지가 굵어지고 잎이 무성해진 결과다.
총 전장이 6890야드(6300m)로 남성 골퍼에게 그리 긴 코스는 아니다. 하지만 레드티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다수 골프장은 통상 레드티를 화이트티보다 50m 정도 앞에 놓지만, 프리스틴밸리GC는 ‘겨우’ 20~30m 정도 앞에 놨기 때문이다. 파5홀 4개 홀 모두 레드티에서 핀까지 400m에 이르기 때문에 ‘3온’하는 여성 아마추어는 흔치 않다.
하지만 이게 오히려 매력 포인트가 됐다. 힘 좋고 도전적인 30~40대 여성 골퍼들을 중심으로 ‘도전하는 재미가 있는 골프장’으로 입소문을 탄 것. 그 덕분에 프리스틴밸리GC의 여성 골퍼 비중은 주변 골프장보다 높은 편이다.
앞뒤가 짧고 좌우로 긴 땅콩 모양 그린도 부담이었다. 그린 주변에 미스샷을 받아줄 만한 여유 공간이 거의 없어서다. 짧게 치면 물에 빠지고, 길게 치면 홀 뒤편에 입 벌리고 있는 낭떠러지로 향한다. 화이트티 기준 140m, 레드티 기준 100m의 길지 않은 홀인 만큼 정확한 샷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한유태 코스관리부장이 “잠시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보라”고 했다. 더운 여름인데도 코끝으로 바람이 살랑거렸다. “오른쪽에서 바람이 치고 올라오는 지형이에요. 바람을 감안해야 합니다. 핀을 직접 노리기보다는 온그린을 목표로 중앙을 보는 게 좋습니다.”
이날 핀은 오른쪽 뒤편에 꽂혀 있었다. 해저드는 넘겨야 한다는 생각에 한 클럽 큰 7번 아이언을 잡았다. 바람의 방향과 핀 위치를 감안해 오른쪽을 겨냥했다. 수풀에 들어갈 각오로. 다행히 물과 수풀 모두 피했다. 대신 조금 컸다. 잘록한 허리 부분에 떨어진 공은 경사를 타고 그린 뒤편으로 흘렀다. 프린지 끝에 걸린 공을 어프로치로 그린에 올린 뒤 2퍼트. 보기로 마무리했다.
클럽하우스는 아담했다. 황토를 고압 처리해 만든 자연친화형 생태 벽돌을 사용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하루 80팀을 7분 간격으로 받는다. 비회원 기준 8월 그린피는 주중 22만원, 주말 28만원.
가평=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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