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 韓·中마저 지갑 닫자…글로벌 명품산업 지형 '뿌리째 흔들'

입력 2023-08-25 18:10   수정 2023-08-26 02:31


글로벌 명품시장에 초대형 인수합병(M&A)이 잇따르면서 산업 전반에 재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등 주요 명품 기업은 글로벌 금융, 재정위기 등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때마다 M&A를 통한 사업 다각화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왔다. 올해 들어 주요국 경기 불황으로 명품사의 실적 둔화 추세가 뚜렷해진 가운데 최근에는 중국의 부동산 리스크까지 더해져 이런 흐름이 가속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잇단 럭셔리 브랜드 M&A
25일 외신에 따르면 ‘코치’ ‘케이트스페이드’ 등을 보유한 미국의 태피스트리가 숙명의 라이벌 카프리홀딩스를 인수한다. 인수 금액만 85억달러(약 11조17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거래다.

카프리홀딩스는 ‘마이클코어스’ ‘지미 추’ ‘베르사체’ 등 럭셔리 브랜드의 모기업이다. 이번 인수로 미국에서도 유럽의 LVMH, 케링에 버금가는 초대형 럭셔리 기업이 탄생하게 됐다.

태피스트리의 코치와 카프리홀딩스의 마이클코어스는 오랜 라이벌 관계다. 이들의 합병에는 미국 명품시장 성장세 둔화라는 배경이 있다. 명품 소비가 확 꺾인 마당에 미국에서 한정된 파이를 두고 출혈 경쟁을 하기보다는 힘을 합쳐 해외 시장을 함께 공략하겠다는 계산이다.

간판 브랜드인 ‘구찌’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케링도 다른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인수하면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지난달엔 17억유로(약 2조4000억원)를 들여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발렌티노’의 지분을 30% 사들였다.

2028년에는 지분 100%를 인수할 수 있는 옵션 계약도 맺었다. 지난 2월에는 뷰티 법인 케링보테를 신설해 패션·잡화에 치중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이후 6월 프랑스 명품 향수 브랜드 ‘크리드’를 인수했다.
○中도 소비 둔화
미국은 지난해 코로나19 봉쇄 정책을 펼친 중국을 제치고 명품 소비 1위 국가에 올랐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케링의 지난 2분기 북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3% 줄었다.

그나마 아시아 시장이 버팀목이 돼 주요 럭셔리 기업의 상반기 전체 매출이 작년 상반기보다 늘어났다. LVMH의 2분기 아시아(일본 제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4% 증가했다. 북미에서 큰 폭의 매출 감소를 겪은 케링도 상반기 글로벌 매출이 2% 늘어 뒷걸음질을 면했다. 케링은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일본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럭셔리 시장의 주요국인 중국과 한국이 급속한 경기 불황에 접어들어 하반기 실적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두 자릿수 증가율을 나타낸 한국의 ‘빅3’ 백화점(롯데·신세계·현대)은 명품 매출이 최근 2개월(6·7월) 동안 월평균 한 자릿수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일부 백화점은 1%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글로벌 위기 때마다 지형 재편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글로벌 럭셔리 업종은 세계적 위기가 찾아왔을 때 초대형 M&A 등을 통해 산업이 크게 재편되는 양상을 보였다. 가장 최근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었던 2021년 LVMH가 158억달러(약 17조원)라는 인수 가격으로 티파니앤드컴퍼니(티파니)를 인수한 사례가 있다.

LVMH는 그해 4월 ‘토즈’ 지분을 늘리고, 7월에는 ‘에트로’와 ‘오프화이트’ 지분까지 사들이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1위 기업 입지를 굳혔다. LVMH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시계 브랜드 ‘위블로’를 사들인 바 있다.

한국 기업들도 유럽 재정위기 때 매물로 나온 해외 패션 브랜드를 대거 매입한 선례가 있다. 이랜드는 2010년 이탈리아 브랜드 ‘라리오’ ‘벨페’, 영국의 ‘피터스콧’을 인수했다. 이듬해에는 ‘록 캐런 오브 스코틀랜드’(영국)와 ‘만다리나덕’(이탈리아)까지 사들였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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