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도체, 맥신(MXene), 양자컴퓨터, 후쿠시마 오염수. 이들 테마는 한 달째 국내 증시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들 테마는 뉴스 흐름에 따라 큰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부 개인 투자자는 빚까지 내며 투자에 올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테마주 광풍에 단기간에 큰 이익을 내려는 욕구가 깔려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마니커, 하림, 교촌에프앤지 등 닭고기 업체의 주가가 강세를 보였다. 테마주 광풍이 닭고기까지 옮겨붙은 모양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의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가 방류되면 수산물 대신 닭고기 등 육류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에 수급이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오염수 테마가 부각되자 맥신, 초전도체 테마주는 대부분 약세를 보였다.
이들 테마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이는 건 개인 투자자다. 테마주의 수급을 보면 뉴스 흐름에 따라 개인의 매수세가 유입되고 있다. 신기술, 신소재를 다룬 뉴스가 나오면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을 통해 테마주 목록이 퍼지고 이후 개인의 매수세가 유입되는 식이다. 초전도체 테마주에 투자했다는 직장인 A씨는 "주변에서 테마주를 추천하기에 신성델타테크를 매수했다"며 "가상자산(코인)에도 투자해본 경험이 있는데, 그때만큼 변동성이 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초전도체 테마에 묶이기 전 1만원대에 머무르던 신성델타테크의 주가는 지난 23일 6만8300원까지 6배가량 올랐다. 6월 기준 15만1211주에 불과했던 일 평균 거래량도 이달 들어(1~24일, 거래정지일 제외)선 1549만1650주로 100배 넘게 뛰었다. 이 회사의 주식은 하루에도 냉탕과 온탕을 수시로 넘나들며 변동성이 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는 테마주 투자를 '독이 든 사탕'이라고 정의했다. 정 대표는 "한 번의 거래로 큰돈을 만지려는 욕구가 테마주 광풍의 배경"이라며 "펀더멘털(기초체력) 고민 없이 묻지마 식으로 매수하는 건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테마주에 진입한 대부분의 투자자는 큰 손실을 보게 된다"며 "불법 리딩방이 선행매매를 위해 테마와 전혀 관련이 없는 종목을 추천하는 경우도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테마주로 엮인 일부 회사는 연관성을 직접 부인했지만, 여전히 급등락세를 겪고 있다. 앞서 덕성, 서남 등은 초전도체 관련 사업을 영위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지난 22일 휴비스는 "최근 화제가 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연구와 자사가 보유한 특허는 연관성이 없다"고 해명 공시했다. 최근 맥신 관련 논문을 발표한 이승철 KIST 책임연구원도 "맥신이 일상생활에서 활용되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빚을 내면서 매수에 나서는 투자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20조1246억원이었다. 연초 16조5310억원이었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이달 들어 4조원 넘게 증가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자금을 빌린 뒤 변제를 마치지 않은 금액이다. 잔액이 늘었다는 것은 레버리지(차입) 투자가 증가했다는 의미다.
일각에선 테마주 열풍이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최근 미국, 중국의 경제 상황이 불확실해 지수의 방향성이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그만큼 시장을 이끌 주도주가 사라졌다는 판단에서다. 최유준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8월은 '테마주의 달'이었다"며 "지수가 추세 전환할 수 있는 재료, 압도적인 주도주가 나타나지 않으면 테마주 장세는 좀 더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승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금융감독 당국은 테마주 순환매 양상을 반기지 않고 있다"며 "새 자금이 유입되지 않으며 테마주들이 돌아가며 조정받고 있어 과열은 진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테마주, 빚투 광풍이 불자 금융투자협회와 한국거래소가 나서 신용 거래와 테마주 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아울러 거래소는 시장참여자 간 정보 불균형 해소를 위해 테마주에 시황 변동 조회공시를 적극 발동하겠다고 밝혔다. 협회도 고객 신용도에 부합하는 신용거래 한도를 부과할 것을 증권사에 요청했다.
이들 단체는 "투기성 자금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가변동성이 높은 경우가 많다"며 "해당 테마에 대한 인식 변화에 따라 단기간에 큰 손실이 초래될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빚을 내 투자할 땐 감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신중히 투자해야 한다고도 했다.
금융당국도 테마주, 빚투 현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은 지난 16일 "투자사기 연루 금융회사에 대한 현장검사와 테마주 관련 허위풍문 유포를 집중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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