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와인의 고장’ 프랑스에서 대량의 와인이 폐기처분된다. 와인 수요가 쪼그라든 탓에 가격이 하락하면서 생산업체들이 줄줄이 재정난을 겪고 있어서다. 프랑스 정부는 와인을 산업용 에탄올로 증류하는 작업에 2억유로가 넘는 예산을 배정했다.
28일 AFP통신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프랑스 농무부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이미 생산된 와인을 폐기하기 위해 2억유로(약 2864억원)를 책정, 유럽연합(EU)으로부터 승인받았다고 발표했다. 보르도, 랑그도크 등 주요 와인 생산지가 지원금 수혜 대상이 될 전망이다. 폐기된 와인은 전량 증류해 손 세정제나 각종 세척제, 향수 등에 사용될 수 있는 산업용 에탄올로 재탄생시킬 계획이다.
프랑스 정부는 또 포도밭이 있던 땅을 뒤엎고 숲으로 바꾸거나 휴경지로 돌리는 데 동의한 생산자들에게는 보상금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보르도 지역 약 1000명의 생산자가 9200헥타르(ha?1ha=1만㎢) 규모의 포도밭을 대상으로 이를 신청했다. 이 밖에 포도 대신 올리브 등으로 경작물을 바꾸는 생산자들에게도 보상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마르크 페스노 농무장관은 이날 와인 양조장을 찾아 기자회견을 열고 “와인 가격을 방어해 와인 생산자들이 수익원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함”이라고 이번 조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와인업계는 소비 성향의 변화를 고민하고, 이에 적응해 생산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농민회에 따르면 현지 생산업체 세 곳 중 한 곳이 와인 수요 감소로 인한 도산 위기에 놓여 있다. 수요가 공급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와인 가격이 폭락한 탓이다.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높아지면서 최근 몇 년 새 포도 수확 시기가 3~4주가량 앞당겨졌고, 생산량도 급격히 늘어났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잉여 생산량은 300만헥토리터(hl, 1hl=100ℓ)로 추정된다. 지난해 연간 생산량(420만hl)의 7% 수준이다. 랑그노크의 와인 생산자 협회를 대변하는 장-필리프 그라니에는 “우리는 너무 많이 생산하고 있다”며 “판매가가 생산비를 밑돌아 손해가 막심하다”고 전했다.
반면 수요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칸타르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의 레드와인 소비량은 지난해까지 10년간 32% 줄었다. 프랑스에만 한정된 현상은 아니다. EU 집행위원회 조사에선 올해 와인 소비량이 포르투갈(-34%), 독일(-22%), 프랑스(-15%), 스페인(-10%), 이탈리아(-7%) 등 유럽 전역에서 뒷걸음질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와인이 소비되는 지역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식당과 술집 등이 봉쇄된 영향이 컸던 데다, 최근 들어서는 술 자체를 선호하지 않거나 와인 대신 맥주를 택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 소비국인 중국에서의 수요 둔화, 인플레이션에 따른 비 필수품 지출 감소 등도 와인 소비를 짓누르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대량으로 생산되는 저가 와인 대신 프리미엄 와인과 샴페인에 대한 수요는 비교적 견조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LVMH나 페르노리카 등 대기업들은 위스퍼링 엔젤, 세인트 마거릿 앙 프로방스 등 고급 로제 와인을 잇달아 출시하며 시장 확장에 나서기도 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