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의 모바일 게임 ‘리니지M’과 웹젠의 ‘R2M’의 유사성을 인정한 법원의 판결로 게임업계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리니지 시리즈와 비슷한 이른바 ‘리니지 라이크’ 게임이 우후죽순 등장한 가운데 다른 서비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8일 엔씨소프트가 웹젠을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침해 중지 등 청구 소송에서 일부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웹젠에 서비스 중단과 함께 손해 배상을 주문했다.
R2M은 2020년 8월 출시됐다. 엔씨소프트는 이 게임이 2017년 내놓은 대규모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리니지M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모방했다며 2021년 6월 소송에 나섰다. R2M이 리니지M의 주요 콘텐츠인 강화 시스템, 아이템 컬렉션 시스템,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등을 모방했다는 이유에서다. 웹젠은 이 같은 표현 요소들이 단순한 게임 규칙일 뿐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맞섰다.
재판부는 R2M이 리니지M이 지닌 구성요소의 선택 배열 및 조합을 통해 종합적인 시스템을 모방했고, 이런 행위가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각 구성요소의 선택, 배열 및 조합을 통해 리니지M에 구현된 시스템은 경제적 가치를 지닌 무형의 성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에 해당한다”며 “R2M은 엔씨소프트 게임만의 특징적 요소들과 구현방식까지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등 모방의 정도가 강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리니지M 내 각종 시스템을 가져다 쓴 것은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게임 규칙이나 진행방식은 창작자가 만들어낸 ‘저작물’이 아니라 ‘아이디어’며, 아이디어는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웹젠은 반발하며 선고 당일날 항소장을 제출했다. 웹젠 측은 “1심 판결은 엔씨소프트가 제기한 두 건의 청구 중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대한 청구만 인용했고 저작권 침해 주장은 기각됐다”며 “부정경쟁행위 인정에 대해서도 2심에서 다툴 예정”이라고 밝혔다. 엔씨소프트는 “이번 판결은 기업의 핵심 자산인 지식재산권(IP) 및 게임 콘텐츠의 성과물 도용에 대한 불법행위를 법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1심의 청구 금액(10억원)은 일부 청구 상태로, 항소심을 통해 청구 범위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 침해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부정경쟁행위로 서비스 금지 판결이 나오면서 게임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리니지M이 성공을 거두면서 국내 게임사들이 리니지와 비슷한 게임을 연이어 내놨기 때문이다. 리니지M은 플레이어 간 경쟁을 유도하는 시스템과 특유의 과금 모델 등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게임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PC 게임 위주였던 엔씨소프트는 모바일 시장의 강자로 자리 잡았다. 후속작인 ‘리니지2M’ ‘리니지W’도 성공을 거뒀다.
리니지 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 다른 게임사들도 리니지 라이크 게임을 선보였다. 카카오게임즈의 ‘오딘: 발할라 라이징’과 ‘아키에이지 워’, 위메이드의 ‘나이트 크로우’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정된 MMORPG 이용자들이 여러 게임으로 분산되면서 엔씨소프트 실적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71% 감소했다. 홍원준 엔씨소프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을 통해 “다수 출시되고 있는 리니지 라이크 게임이 매출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엔씨소프트의 또 다른 소송 상대는 ‘아키에이지 워’를 내놓은 카카오게임즈와 개발 자회사인 엑스엘게임즈다. 엔씨소프트는 ‘아키에이지 워’가 리니지2M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모방했다며 올해 4월 소송을 제기했다. 엔씨소프트가 실적 하락을 막기 위해 다른 게임사에도 추가 소송을 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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