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골프 간판’ 빅토르 호블란(26)이 태어난 오슬로는 겨울이 길고 날씨가 추워 1년에 절반 정도만 골프를 즐길 수 있다. 호블란이 등장하기 전까지 노르웨이 국적의 유명 골프 선수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15승을 거둔 수잔 페테르센(42)에 그쳤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호블란이 세계적인 골프 선수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부모의 역할이 컸다. 엔지니어인 아버지는 일 때문에 미국을 오갔고, 호블란이 만 세 살 때 골프채를 잡게 해줬다. 호블란의 아버지가 골프를 위한 물리적 환경을 조성해줬다면 호블란의 어머니는 골프 선수로서 마음가짐을 관리했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던 벌타 상황을 알아내 아들에게 자진신고하도록 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호블란은 ‘제5의 메이저대회’로 불리는 2021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1라운드 15번홀(파4)에서 마크 위치를 옮긴 공을 제 위치에 놓지 않고 재개했다가 2벌타를 받았다. 당시 호블란은 노르웨이에 있던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실수 사실을 알았고 뒤늦게 신고했다. 벌타가 없었다면 커트 통과가 가능했지만 호블란의 어머니는 굳이 공개했다.
지난주 열린 BMW 챔피언십(우승상금 360만달러)에 이어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챔피언에게 주는 보너스 1800만달러(약 238억5000만원)까지 챙긴 그가 2주간 벌어들인 돈은 2160만달러로 285억원 가까이 된다.
호블란은 “지난 2주간 최고의 골프를 했다”며 “당장은 차를 사거나 어디에 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태권도 검은띠 유단자로 국내에서 ‘태권 소년’으로 알려진 호블란은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아마추어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2018년엔 US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2019년 마스터스와 US오픈에선 아마추어 1위에 오르며 이름을 널리 알렸다. 프로로 전향한 2020년 2월 푸에르토리코 오픈에선 PGA투어 첫 승을 달성했다. 이 모든 게 노르웨이 선수로는 처음 이룬 업적이다.
2021년까지 PGA투어에서 3승을 쌓은 뒤 잠시 숨을 고른 호블란이 살아난 건 올해 6월부터다. 그는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더니 지난주 BMW 챔피언십에 이어 투어 챔피언십까지 제패하며 세계 최정상급 선수로 우뚝 섰다. 호블란에게 밀려 이번주 준우승에 그친 쇼플리조차 “해가 질 때까지 연습하는 선수는 호블란밖에 없다.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라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이날 최종 라운드에선 8타를 줄인 쇼플리가 맹추격을 해왔지만, 스코어가 가장 좁혀진 상황에서도 3타 차로 앞섰을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를 펼쳤다. 14번홀(파4)에선 약 7m 거리의 파 퍼트를 넣으며 경쟁자들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플레이오프 2차전까지 페덱스컵 랭킹 1위를 달려 10언더파를 안고 출발한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27·미국)는 지난 시즌에 이어 올해도 1위를 지키지 못한 채 합계 11언더파 공동 6위로 대회를 마쳤다. 윈덤 클라크(44·미국)가 16언더파 3위, 디펜딩 챔피언 로리 매킬로이(34·북아일랜드)가 14언더파 4위를 차지했다.
김주형(21)과 김시우(28)는 최종합계 6언더파를 기록해 공동 20위에 올랐다. 임성재(25)는 3언더파 24위로 마쳤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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